[씨네21 리뷰]
싱그러운 청춘들의 시대착오적 로맨스,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
2004-03-16
글 : 김도훈
표백제로 헹구어낸 시대 속의 신데렐라 스토리. 그래도 로맨스는 언제나 유효하다

평범한 소녀에게 할리우드 스타와의 데이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아이디어는 이처럼 간단명료한 소망실현의 신데렐라 스토리로부터 출발한다. 슈퍼마켓 점원 로잘리는 우연히 ‘할리우드 스타 태드 해밀턴과의 데이트’ 이벤트에 당첨되고 할리우드로 가서 꿈에 그리던 데이트를 한다. 이는 스캔들로 얼룩진 태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에이전시의 아이디어였지만, 순박한 소녀에게 반해버린 태드는 웨스트 버지니아로 날아가고야 만다. 시골 마을은 할리우드 스타의 등장으로 술렁이고, 가장 심사가 꼬이는 사람은 로잘리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소꿉친구 피트다. 그러니까 애초에 말했듯이 모든 것은 간단명료하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삼각관계로 살짝 양념하고 싱그러운 청춘들을 배치하면 영화는 완성된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그 뜬금없이 실종된 시대성이다. 영화 속 웨스트 버지니아는 마치 50년대 클래식영화들의 무대처럼 보인다. 로잘리가 할리우드로 떠나는 장면에서 소꿉친구 피트는 “처녀성을 지켜!”라고 외치기까지 한다(!). 영화는 50년대 배경의 영화 속 영화로 시작되고, 그것과 똑같이 재현되는 현재의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 수미쌍관의 라스트신은 그 표백된 시대성에 대한 제작진의 변명이다.

매력적인 할리우드 스타를 버리고 소꿉친구의 품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섹스없는 로맨스라는 것이 ‘타락한 현대관객’에게는 지나치게 순진무구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귀향’ 로맨스들(<워크 투 리멤버> <스위트 홈 알라바마>)과 닮아 있는 대목에서는 보수화되어가는 할리우드(특히 10대물에서)와 공화당 정부의 타협점을 흥미롭게 읽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클리셰로 가득 찬 시대착오적 로맨스라도 그 순진한 미소 앞에서 끊임없이 삐딱함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블루 크러쉬>의 케이트 보스워스는 새로운 신데렐라로 완벽하고, 태드 역의 조시 두하멜은 여성관객, 혹은 몇몇 남성관객의 호르몬 분비를 자극한다. 피트 역의 토퍼 그레이스는 훌륭하다. <트래픽>에서 마약중독자 역을 기막히게 소화해냈던 그는, 너무도 가벼워서 바람에 날아갈 듯한 영화에 적절한 무게추를 달아주는 믿음직한 ‘배우’다. 그가 없었더라면 태드 해밀턴의 매력에 숨넘어가는 로잘리와 관객을 피트에게 되돌리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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