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신사의 변신은 무죄, <맹부삼천지교>의 손창민
2004-03-17
글 : 오정연
사진 : 정진환

드라마 속에서는 완벽, 근엄, 혹은 젠틀한 이미지로 각인된 배우들이, 최근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코믹영화를 통해 의외의 변신을 꾀하는 것은 이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한때의 청춘스타이자 드라마 속 완벽남 손창민이 <정글쥬스>에 이어 개봉을 앞둔 <맹부삼천지교>에서 두 번째 조폭 연기를 선보였고, 다음 영화 <나두야 간다>에서 역시 조폭으로 출연하는 것을 두고 강렬한 캐릭터를 통해 손쉬운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편견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손창민 자신은, “<정글쥬스>에서는 막 나가는 돌깡패였다면 <맹부삼천지교>에서는 중간급 보스였고, 촬영 중인 <나두야 간다>에서는 기업형 조직의 보스니까 어쨌든 계속해서 출세 중”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낮게 깔리면서 이어지는 인상적인 경상도 사투리를 제외하면, <맹부삼천지교> 속 강두는 평소 그의 이미지를 ‘조폭화’했다는 느낌, 혹은 조폭의 캐릭터를 ‘손창민화’했다는 느낌이 강한데, 오버함으로써 손쉬운 웃음이나 가벼운 감동을 주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조절한 흔적이 보인다. “<정글쥬스>에서는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강두를 ‘나’라는 브랜드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고, 수위조절이 어느 정도 되었다고 본다”고 스스로도 말한다.

그런데 70년대부터 꾸준히 한국 영화계에 몸담았던 연기경력 30년의 손창민이, <맹부삼천지교>는 도저히 감이 안 생긴다면서,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계속해서 묻는다. 그 떨림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더군다나 처음으로 영화의 완성본을 접한 그는, 촬영 때보다 현저하게 줄어든 자신의 분량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아쉬움도 감출 수 없는 상태. 물론 매번 “영화를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줄어든 이유도 모두 납득하고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영화에서 모든 갈등이 종결되고 자연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강두가 본래의 손창민과 비슷한 미소를 지어보인 것처럼, 이것이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후속작을 찍는 와중에 매일 하는 운동은 빼먹지 않는 사람이다. 배에 칼을 맞고도 “건달은 운동을 하루라도 띵가뿔면 안 되는기라”는 명대사를 날렸던 강두가 얼핏 떠오르는데, 거기에 손창민의 모습이 연속해서 겹쳐진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그와 비견할 만한 이는 강수연 정도뿐임을 상기한다면 슬럼프 없이 자기관리하는 모범생이라는 느낌도 든다. “슬럼프가 없었던 게 아니라 표현을 못했던 거죠. 아역스타, 하이틴스타, 청춘스타 등의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서 항상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걸 표현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어요. 다만 영화든 드라마든 그야말로 잘 나가고 있을 때마다 이게 영원하진 않을 텐데, 뭔가 변화가 필요할 텐데 하는 생각을 직감적으로 해왔어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부터 <은마는 오지 않는다>까지 3편의 영화가 관객과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을 받으면서 성인배우로서 전성기를 구가했을 때, 혹은 98년부터 3년 동안 인기드라마 10편을 몰아서 찍었을 때,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후적으로 봤을 때, 그 직감은 어느 정도 옳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의 직감이 무얼 말하고 있을까? 멋있고 그럴듯한 역할을 맡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얼핏 비슷하게 보이는 조폭영화 3편을 모두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그가 예전과 다름없는 그 미소를 짓는 순간, 그의 변화와 한결같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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