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독이 몸부림칠 때> CG 제작 DTI 기획이사 이윤석
2004-03-17
글 : 심지현 (객원기자)
사진 : 정진환
CG판 동물의 왕국

프로필 l 1966년생·연세대 문헌정보학과 85학번·현재 DTI 기획이사로 활동

실사를 따라가려는 CG의 몸부림은 무서울 정도다. 팔짱 끼며 들여다보던 어제와 달리 오늘의 CG는 실제인 양 착각을 일으키며 두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쥬만지>나 <쥬라기 공원>을 예로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대답은 ‘노’다. <고독이 몸부림 칠 때>의 오프닝신에 등장하는 3D 타조가 그렇다는 얘기다. 섬세한 깃털의 흔들림과 실룩이며 균형을 맞추는 엉덩이의 움직임까지 ‘우리나라 CG 실력이 언제 저렇게 발전했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살인의 추억>에서 논두렁을 뛰놀던 벌레와 <장화, 홍련>의 귀신, <…ing>의 거북이까지 두루 섭렵한 DTI의 실력이라고 하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계에서 특히 3D를 잘하는 CG업체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아 유 레디?> <내츄럴시티> 등 대거 CG로 화면을 채운 영화들이 속속 흥행에 실패하면서 CG업계의 위상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차분히 발걸음을 옮겨온 DTI는 요즘 알차게 다져진 실력을 알리느라 바쁘다.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자존심만 내세울 게 아니라 예산에 맞추어 가장 실속있는 장면을 뽑아내는 게 중요하죠.”

DTI 기획이사인 이윤석(39)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영리함을 갖춘 사람이다. “때로는 실사로 찍는 편이 나은 신이 있어요. 그럴 땐 망설일 것 없이 그렇게 가자고 권유하죠. 그러면 돈 벌 마음이 없는 거냐고 놀림을 받기도 해요.” <고독…>의 타조신은 시나리오 전개상 크게 필요한 장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관객을 즐겁게 해주고 극중 인물 묘사를 위해 넣기로 한 장면. 그러나 타조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시간이 많이 걸릴 터였다. 고심 끝에 “러닝머신 위에 타조를 태우고 뛰게 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오기민 PD의 결단으로 CG가 삽입됐다. 단 한 장면을 위해 많은 예산이 들어간 셈이다. 그래도 오 PD와 DTI, 그리고 한국 영화계로서는 좋은 실험결과를 얻었다. 우리도 외국처럼 번듯한 3D를 선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것.

2000년에 광고에 쓰이는 CG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도둑맞곤 못살아>로 영화계에 진출한 DTI는 현재 <고독…>의 개봉을 앞두고, <마지막 늑대> <귀신이 산다>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드한 재질보다는 부드럽고 섬세한 근육을 갖춘 생명체를 묘사하는 게 힘들다지만, 벌레, 귀신, 동물을 성공적으로 묘사해온 업체답게 다음 개봉작에서의 자신감이 두둑하다.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첫 번째고, 그 다음엔 결단력이다”라고 말하는 이윤석 이사는 시나리오를 받으면 10회 이상은 숙독할 것과 굳이 CG가 필요없는 장면은 과감히 실사촬영을 주장할 것을 스탭들에게 당부한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성공하는 것이 영화사와 CG업체의 공동숙명”이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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