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vs 건달]
예쁜 맨 얼굴!, <송환>
2004-03-18
글 : 남재일 (문화평론가)

건달, <송환>의 투박한 미니멀리즘에 반하다

흔히 역사 속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한다.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수혜자. 그런데 문제는 피해자는 늘 선명하지만 가해자와 수혜자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노름판의 파장 정산이 언제나 딴 돈보다 잃은 돈의 액수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비전향 장기수도 아주 선연한 역사의 상흔이지만, 여기에 대해 자신을 가해자와 수혜자의 위치에서 상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건 아마 우리가 오래전에 흘러보낸 과거 속에서 어느 날 문득 그들이 현실 속으로 역류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이 감옥에서 상처의 깊이를 더하는 동안 세상은 열심히 그들을 지우고 있었고, 말끔히 지워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들은 피멍 든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이렇게 피해자는 선명한데 가해와 수혜의 소재가 불분명하면 구경꾼들은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은 장기수가 너무 억울하다는 최소한의 평등감각에서 비롯된 부채의식과 어쩌면 거기에 내가 가해자로 연루됐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죄의식, 그리고 그들을 위해 현재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무력감의 발로일 게다.

나는 이런 불편함을 안고 지난 3월8일 저녁에 열린 <송환>의 시사회장에서 처음으로 비전향 장기수의 삶과 대면했다. <송환>은 평균 복역기간이 30년 넘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12년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영화이다. 이쯤 되면 소재가 된 사람들의 삶과 그걸 제작한 감독에 대해 뭔가 모종의 경배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말하자면, 나는 소재의 무게에 상당히 짓눌려 있었다. 그래서, 사실 이 영화는 텍스트의 재미보다 관람행위에 부가되는 의무감을 채워주는 영화로 생각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웬만한 극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두 시간이 넘게 상영됐지만 그 시간이 잠깐 사이에 흘러갔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이 영화에 몰입했다.

첫째는 소재가 주는 아주 희소한 맛이다. 이 영화는 이념을 위해 고통을 이겨낸 화려한 혁명전사에 관한 얘기는 아니다. 오랜 감옥 생활 속에서 장기수들은 할아버지가 됐고 그들이 던져주는 첫 느낌은 남루함이다. 그러나, 그 남루함 사이로 문득문득 스며나오는 어떤 맑은 힘 같은 게 있다. 30년 이상을 뭔가 지켜내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면서 보낸 삶의 태도 같은 게 있다. 실례를 무릅쓰고 비유하자면, 장기수 할아버지의 삶은 30년을 땅속에 묻어 숙성시킨 된장 같은 구석이 있다. 이런 맛은 그 조미료로도 낼 수 없는 재료 자체가 갖고 있는 맛이다. 잘 삭은 사실의 맛! 이 맛은 조미료 범벅인 로맨틱코미디에 중독된 언니들과 종합비타민 같은 뉴스만 보는 오빠들이 반드시 한번 봐야 할 맛이다. 연애보다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9시 뉴스보다 심각하고 유장혀!

또 한 가지 나를 몰입시켰던 것은 김동원 감독의 화술이다. 이 영화의 화법은 특이하다. 너무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말하는 거 같아서 특이하다. 굳이 명명하자면 투박한 미니멀리즘이라 할 수 있다. 고의로 적게 말해서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이려고 작업하는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찍어서 장식을 최소화했다는 의미에서 미니멀하다. 이런 태도는 형식에 대한 자의식의 산물로 피사체와 렌즈 사이의 거리를 줄이려는 또 다른 평등감각의 발로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카메라를 찍는 사람과 장기수 할아버지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이 화술은 아마도 오랜 시간 다져온 김동원 감독의 삶의 태도가 아닌가 싶었다. 그의 화법은 형식이 삶의 실체를 덮어버리는 소외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다. 또, 미학적 취향이 정치적 실천을 덮어버리는 의사도덕주의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미니멀한 리얼리스트다. 자신의 정치적 실천을 위해 편하게 형식을 사용하는 사람. 지식이든 예술적 재능이든 그 형식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다. 지식인, 예술가 등과 같이 추상적인 범주에 집착하는 종자들이 있다. 이런 종자들은 대체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한국의 역사에서 이런 미학적 포즈는 정치적 실천을 회피하기 위한 표정연기로 매우 인기가 높았다. 거기에 비하면 <송환>은 얼마나 예쁜 맨 얼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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