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의 신앙, 지켜보거나 느끼거나
멜 깁슨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영화 곳곳, 아니 전체에서 드러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기독교 신자를 위한 영화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신자가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매우 단순하고 평이한 영화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본 정도다. 극사실주의로 모든 것이 묘사되었지만, 그것이 ‘역사적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치적 입장이나 역사적 상황을 개입시켜 해석할 수도 없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한 적합한 평가는, 기독교 신자가 보기에 예수의 수난의 의미를 얼마나 진실하게, 가슴으로 전해지도록 그려냈는가, 일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놓고, 멜 깁슨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찬 역시, 그의 신앙심이 얼마나 독실하고 깊은지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닐까. 신앙심은 결코 논리나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고보니 멜 깁슨은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에서, ‘믿음’을 회의하지만 결국은 그 무조건적인 믿음의 의미를 깨닫는 신부로 나온 적이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런 믿음에 관한 영화다. 그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자라면 그저 성실한 종교영화이지만, 믿음에 동의한다면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둘러싼 사건일지
2002. 9 <패션>의 프리프로덕션 시작되다. 멜 깁슨, 감독과 공동각본에 사재 2500만달러를 들여 제작자까지 겸하다.
2002. 10 <패션>이 영어가 아니라 고대 라틴어와 아람어로 제작될 것이라고 알려지다. 멜 깁슨, “내 영화는 사실적인 재현이 목표”라며 영어자막도 없다고 못 박다.
2003. 1 로마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패션>, 제작 완료하다.
2003. 3 일부 유대인 신학자들이 멜 깁슨의 영화사 아이콘 프로덕션을 찾아가 대본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다. 그리고 깨끗이 거절당하다.
2003. 10 <패션>, 배급사를 구하지 못하고 계속 헤매던 중 <메멘토>를 배급했던 뉴마켓 필름과 계약하다. 주연배우 짐 카비젤과 조감독 잰 미셀리니가 영화 촬영 도중 벼락을 맞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다. 제목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수정하다.
2003. 11 할리우드 관계자와 일반 관객을 일부 모아놓고 시사회를 열다. 그날 아침, 프린트 한벌을 도난당하다. 며칠 뒤 <뉴욕 포스트> 신문사 건물 앞에서 해적판 프린트가 발견되다.
2003. 12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DVD로 <패션…>을 감상하고 나서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고 평하다. 이후, 이 발언이 반유대주의 논쟁에 바티칸을 끌어들이게 될까 걱정한 바티칸 관계자들이 황급히 교황의 발언을 수습하다.
2004. 2 이스라엘의 종교정당 대표, <패션…>의 이스라엘 개봉 금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다.
2004. 2. 25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미국 전역 2천여개 극장에서 개봉, 2360만달러의 성적을 내다. 관람 도중 구토, 기절한 관객뿐 아니라 사망자도 발생하다. 사운드트랙, 발매 첫주에 약 4만9천장이 팔리면서 기록 3위에 오르다.
2004. 3 예수 관련 서적 판매가 급증하다. 스티브 마틴, <패션…>이 돈에 혈안된 쇼비즈니스 전략이라며 멜 깁슨을 강력 비난하는 칼럼을 <뉴요커>에 기고하다. 유대인 감독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의 DVD 출시 기자회견에서 <패션…>에 관한 어떤 질문에도 함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