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돌아온 해병의 후일담을 위해 준비된 특설 스파링, <스나이퍼2>
2004-03-23
글 : 김종연 (영화평론가)
9년 만에 뜬금없이 돌아온 파나마의 살인자, 발칸에서 싱겁게 명예를 회복하다

어디서 날아와 언제 자신의 목숨을 끊을지 모르는 저격수의 탄환, 그것만큼 전쟁의 판타지를 박살내는 것도 없다. 하지만 며칠이고 한자리에 매복해 2km 바깥의 표적을 명중시키고야 마는 이들의 초인적 능력에 대한 매혹도 동시에 존재한다. 90년대 초, <플래툰>의 인상적 악역 톰 베린저를 맞아들여 만든 <스나이퍼>는 사실 이 매혹에 기초한 영화였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이라기보다 차라리 심리적 충돌에 가까운 이 살인기계들끼리의 대결은 (아마도 본의 아니게) 심리드라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선악의 구분이 무의미한 파나마의 검은 정글에서 드러났던 것은 그들이 맡은 임무의 부도덕성과 미국 정부의 세계적 암약, 그 더러운 실체였다. 이처럼 예기치 않게 미국의 은밀한 개입주의를 고발하게 된, 93년의 <스나이퍼>는 걸작은 아니지만 쉴새없는 광장공포증으로 아득한 장렬한 소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 손가락을 잃고 시력마저 온전치 않아 퇴역했던 파나마의 저격수가 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다. 이번엔 인종청소의 죄악으로 숱한 모슬렘의 피가 뿌려진 발칸반도. 그리고 대학살의 주범을 제거하기 위한 이 비공식 임무에 나름대로 사연 많은 흑인 스나이퍼 폴이 파트너로 따라붙어 1편에서의 버디무비를 재현할 참이다. 그러나 9년이 흘러 뜬금없이 돌아온 2002년의 속편은 지난 세월을 속일 수 없다. 톰 베린저도 50을 훌쩍 넘겼고 임무에 실패한 저격수들의 존재를 부인했던 정부도 지금은 “미군인 그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라 말할 만큼 자애롭기만 하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국가의 죄악을 감당하느라 자신의 인성마저 도려내야 했던 저격수의 긴장감을 ‘해병으로 죽기를 바라는’ 퇴역 군인의 무용담으로 대체하고 말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처럼 긴장감을 휘발시킨 <스나이퍼2>는 단조로운 정글 대신 동유럽 시가지를 박아넣고 구색맞게 스나이퍼끼리의 대결도 집어넣는다. 그러나 이 대결은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만큼 싱겁고 마치 ‘돌아온 해병’의 화끈한 후일담을 위해 준비된 특설 스파링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TV영화의 한계정도랄 수 있겠지만, 굳이 2002년이라는 수상한 시절에, 너무나 지당한 말씀만 골라서 읊는 반체제 작가를 옆에 끼고 당당히 돌아온 이들의 모습은, 93년의 전편과 비교하자면 어째 미심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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