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새영화] <어린 신부>
2004-03-30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로맨틱 코미디라는 산 정상에 ‘결혼’이라는 고지가 있지만, 고지를 점령했다고 해서 반드시 두 남녀 간의 로맨스가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개봉작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가 보여주었듯이 말이다. 결혼이 곧 인격적 성숙의 척도라고 말했다가는 구시대의 유물을 보는 듯한 눈초리를 받을 법한 요즘, 영화도 결혼이라는 분기점에서 가족드라마로 넘어가기보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2차전, 또는 속편을 따라가고 싶어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김래원, 문근영 주연의 <어린 신부> 역시 결혼 뒤에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그린 영화다. 결혼한 남녀의 아웅다웅 싸움과 달콤한 화해를 그리지만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나 텔레비전 드라마 <천생연분>보다 극단적인 설정이다. 열여섯 여고생과 스물넷 대학생이 결혼을 했으니 한세기 전이 아니고서야 정상으로 보일 리 만무다. 그러나 이게 말이 되나라고 흥분하거나 두 사람이 결혼한 이유의 빈약함을 꼬투리잡는 건 ‘이유없는 반항’처럼 보인다.

영화의 관심사는 오로지 상종가를 치고 있는 두 청춘배우의 모습을 좀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여주는 데만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별다른 줄거리나 굴곡 없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며 특별한 캐릭터도 없는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남녀 주인공 김래원과 문근영의 힘이다. 특히 뽀얀 얼굴과 맑은 눈망울의 문근영은 영화 속 가장 사랑스러운 신부 베스트에 꼽힐 만큼 깜찍하다.

할아버지의 ‘협박’으로 얼떨결에 결혼한 둘에게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소꿉장난이다. 음식을 한답시고 주방에서 야채를 서로에게 던지며 놀거나, 친구들과 우루루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아제끼며, 할인마트에 가서는 장바구니용 카트를 놀이기구처럼 타고 논다. 여기에 남편 상민이 교생실습 간 보은이네 학교 노처녀 여교사의 육탄공세와 아내 보은의 학교 야구선수 ‘오빠’를 향한 당돌한 첫사랑이 끼어들어 웃음의 조미료를 첨가한다.

두 사람의 갈등조차 부드러운 솜사탕 같이만 느껴지는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여고생의 결혼이라는 ‘센’ 설정이 ‘약한’ 이야기를 온전히 만회하지는 않는다. 결혼을 하고 나면 여자는 모두 억척스럽게 남편을 챙기는 아줌마로 변한다는 진부한 발상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도 영화의 매력을 깎아먹는다. <편지> <산책>의 조감독을 했던 김호준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4월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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