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이러니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야 제 맛이다. <마지막 늑대>는 최철권의 반대편에 범죄없는 무위마을이 심심해 죽겠다는 고 순경(황정민)을 등장시킨다. 힘이 남아돌아 황소 대신 밭을 가는 이 남자는 강력계 형사가 되어 범죄조직과 멋지게 싸우는 게 꿈이다. 당연히 최철권과 상반된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여기부터는 성격이 다른 두명의 경찰이 옥신각신 다투며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리쎌웨폰> <러시아워> 등 수많은 할리우드영화에서 익히 봤던 이런 이야기 패턴은 국내에서도 멀리 <투캅스>에서 최근 <살인의 추억>까지 되풀이 응용됐다. <마지막 늑대>는 이런 공식을 응용, 무위마을의 두 경찰이 공조에 이르는 과정을 뒤쫓는다. 상반된 입장을 가진 두 인물이 엉뚱한 이유로 같은 목표를 추구할 때 영화는 다시 한번 아이러니에 기댄 웃음을 준비한다. 짐작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마지막 늑대>는 도시와 시골의 대립구도에서 작동하는 코미디다. 법, 경찰, 범죄, 처벌이라는 도시의 질서는 이곳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대신 무위마을에 있는 것은 토끼, 늑대, 소, 밭, 농사짓는 노인 등이다. <선생 김봉두>에서 봤듯 이런 장소에서 도시의 관행을 들먹이는 건 웃기는 짓이 된다. 돈봉투를 기대하는 선생이 바보가 되듯 무위마을에서 벌어지는 음주측정과 도박단속은 경찰의 위신만 떨어뜨린다. 초반에 멧돼지가 파출소 안을 휘젓고 다니는 장면이나 고 순경이 소 대신 밭을 가는 장면이 보여주듯 이질적 요소의 충돌은 이 영화가 발굴한 가장 큰 웃음의 원천이다.
하지만 풍성한 코미디의 재료에 비해 감독의 요리솜씨가 그리 좋진 않다. 초반에 깔아놓은 포석만 놓고 보면 꽤 근사한데 제대로 우려내고 숙성시킨 맛이 나질 않는다. 예를 들어 서울 형사와 시골 순경의 갈등은 극적인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채 안이한 방식으로 풀린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와 김상경이 주고받는 팽팽한 긴장에 비교하면 영화 속 표현대로 “매가리가 없어서리”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양동근과 황정민의 연기호흡은 괜찮지만 캐릭터의 매력이 강렬한 인상을 남길 정도는 못 되는 것이다. 조연배우들도 비슷한 약점을 공유한다. 문화재 전문털이범 3인조인 오광록, 오달수, 유승목, 절의 주지 이봉규, 고 순경의 애인으로 나오는 김현정, 그녀와 삼각관계에 놓인 래커차 기사 광수 역의 조희봉 등은 연기자로서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지만 그것만으로 극의 캐릭터로 각인되는 건 아니다. 특히 파출소장은 극 전체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이고 고 순경의 애인 또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짐작하기 힘들다. 그래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면 대부분 지역주민으로 나오는 단역배우들의 연기 같지 않은 연기 덕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늑대>로 데뷔하는 구자홍 감독은 이 영화를 IMF 당시 구상했다고 말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하자고 외치던 시대, 금을 모아 기업이 빚진 돈을 갚자고 나서던 사회에 대한 반감이 이 영화에 들어 있다. 지금 역시 그때와 다르지 않기에 “일하지 말고 놀자”는 반항과 일탈은 분명 <마지막 늑대>의 신선한 미덕이 된다. 영화를 보면 그 취지는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취지가 좋다고 좋은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부분적으로 웃기지만 허전하고 꽤 도발적이지만 힘이 없다. 이래선 취지가 잘 살기 힘들다는 게 <마지막 늑대>가 전하는 마지막 아이러니다.
:: 구자홍 감독 인터뷰
최 형사가 늑대처럼 보이길 바랐다
구자홍(37) 감독은 광고대행사 프로듀서로 일하다 파리에서 2년간 영화를 보고 돌아와 <마지막 늑대>의 시나리오를 썼다. 현장경험은 박찬욱 감독의 단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에서 조감독을 한 것이 전부. 오래전 그가 쓴 시나리오를 발견한 제작사의 권유로 <마지막 늑대> 연출까지 맡게 됐다. 제목이 <마지막 늑대>인데 이야기와 제목의 연관성이 좀 모호하다.양동근이 서울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늑대처럼 보이길 바랐다.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의 페이소스 같은 걸 기대했는데 얼마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에 양동근과 늑대가 시선을 교환할 때는 “너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하는 느낌이 왔으면 싶었다. 하지만 늑대를 찍는 과정이 쉽지 않은 일이라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장르로 보면 두명의 경찰이 티격태격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다. 하지만 장르를 의식하지 않은 듯한 느낌도 든다.흔히 생각하면 주인공 둘이 중심인 드라마인데 시나리오를 쓸 때 그런 생각을 안 했다. 황정민씨가 열심히 해서 예상보다 비중이 커진 것 같긴 하다. 일반적으로 경찰 둘이 주인공이면 서로가 상대에게 거울상으로 기능하고 상대에게 배우면서 우정이 쌓이는 식인데 그건 재미가 없었다.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하나, 싶어서 처음부터 다르게 가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 형사의 심리에 좀더 집중했다.
도입부엔 최 형사의 내레이션이 있는데 나중엔 전혀 없다. 내레이션을 적극 활용할 생각은 없었나.내레이션이 없어서 불친절한 면은 있는 것 같다. <올드보이>를 보면 적절한 내레이션이 주인공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데…. 최 형사의 행동이 위악이라는 점에서 얼굴 대놓고 얘기하는 듯한 내레이션은 피했다. 내레이션을 최소로 해도 양동근의 표정으로 많이 표현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양동근의 얼굴이 밝았다 어두웠다 한다. 남들 앞에서 장난치는 모습과 혼자 있을 때 어두운 모습이 많이 다르다.
조연들의 경우 연기가 개성적이긴 한데 각자의 캐릭터를 잘 살린 것 같진 않다.파출소장으로 나온 장항선씨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캐릭터라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한 인물이라고 설정했던 경우다. 문화재털이범 가운데 우두머리인 독수리는 스스로 문화예술에 관련된 일을 한다는 데 자긍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의상이나 소품을 자세히 보면 이해될 거다. 가장 아쉬운 인물은 고 순경의 애인 두미다. 처음에 게으른 여자라고 설정하고 찍었는데 몇 장면을 편집에서 자르면서 오해의 소지가 생겼다. 내게 순결에 대한 집착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더라. 정반대로 순결에 집착하는 남자들을 비판하는 의미를 찍었던 건데 앞 장면을 자르니까 그런 문제가 생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