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개화기도 아닌 요즘 세상에 정혼 같은 것이 도대체 가능한 것인가 하는 따위의 질문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포인트는 ‘정혼’을 통해 파격적으로 삭감된 신부의 ‘나이’이다. 그러니까 ‘낭랑 18세’가 아니라 ‘낭랑 16세’ 정도랄까. 그러나 이 ‘두살’의 의미는 적지 않다.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가 이 사이에 놓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TV드라마와 두는 차별성도 거듭 원조교제를 의심받는 이 아슬아슬함에 있다. 게다가 아직 정절의 의무를 알 리 없는 열여섯 꿈 많은 신부가 야구부 남자 선배와 벌이는 외도(?)까지 겹치면 영화는 자체 내장된 결말로 가기까지 무척 지난한 여정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그 결말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게으르다. 교생실습 온 상민을 향한 노처녀 교사의 육탄공세, 상민이 학교에서 보은의 팬티로 땀을 닦는 장면과 같은 해프닝들로 느슨하게 러닝타임을 소모할 뿐이다. 이어 추억의 장치들이 억지스럽게 끼어들고 일장연설과 갈채로 부부애를 확인하려는 감동의 마무리가 기다리지만 아연 얄팍하기만 하다. 그러나 영화를 지탱하는 것은 깜찍한 여고생과 허허실실 매력남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두 배우의 매력이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연인들끼리의 케미스트리조차 없다는 점. 하여 두 배우의 매력과 개인기는 각자 소구해야 할 관객층을 향해 시종 따로 논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뭐 어떤가? 아무리 잘 봐줘도 매력적인 오누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영화의 목표는 ‘깜찍함’으로 결혼드라마를 물타기하려는 것임을. 다만 ‘(남편은 있어도 남자친구는) 없어요’라는 대답 정도가 이 영화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유효한 농담이라는 것이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