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다름의 묘약이 주는 웃음, <프리키 프라이데이>
2004-03-30
글 : 김도훈
몸이 뒤바뀐 엄마와 딸, 서로의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가까이는 <체인지>라는 한국영화부터 멀게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재기발랄함까지, ‘몸 바꾸기’의 판타지는 코미디영화의 오랜 소재 중 하나다. <프리키 프라이데이> 역시 이 오래된 아이디어를 웃음의 도구로 끌어낸다. 엄마인 테스와 딸인 애나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커리어우먼 엄마’와 ‘반항기로 똘똘 뭉친 틴에이저 딸’의 관습적인 구도를 형성한다. 테스의 재혼을 앞두고 으르렁거리던 그들은 중국 레스토랑에서 받은 포천쿠키의 마력으로 서로의 몸을 바꿔쓰게 된다. 모녀는 몸이 되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로의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동시에 몸을 되찾을 해결책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서로를 흉내내기에 둘은 너무도 다르다는 거다.

<프리키 프라이데이>의 웃음은 바로 이 ‘다름’의 묘약이다. 그리고 그 웃음은 심리치료사인 엄마가 딸의 몸을 하고, 자유분방한 록밴드 멤버인 딸이 엄마의 몸을 하고 서로의 입장을 역동적으로 파괴하는 그 혼란스런 상황들에서 나온다. 자연스럽게도, 서로의 사회적 위치를 파괴시키는 동시에 그들은 서로를 천천히 이해하기 시작한다. <프리키 프라이데이>의 미덕은 사실 이 구태의연한 아이디어가 여전히 꽤나 잘 먹힌다는 점이다. 특히나 애나의 몸을 하고 있는 테스가 불공정한 선생에게 경고하는 장면이나 테스의 몸을 하고 있는 애나가 골칫거리 남동생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장면은 디즈니영화 특유의 달짝지근한 작위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여전히 미소를 띠게 만든다.

압권은 애나의 남자친구가 테스의 몸을 하고 있는 애나와 사랑에 빠지는 에피소드다. 중년 아줌마(의 몸을 한 소녀)와 젊고 싱싱한 남자의 로맨스는 포복절도할 상황들을 낳는 동시에 ‘중년의 육체’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는 산뜻한 힘이 있다. 물론 영화는 그 힘의 많은 부분을 제이미 리 커티스에게 빚지고 있다. 이 에너지로 가득 찬 여배우가 중년의 몸을 쓴 틴에이저를 연기하는 것을 보노라면 <빅>에서 톰 행크스가 지니고 있었던 그 절묘한 위트가 생각난다. <페어런트 트랩>의 린제이 로한도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다. ‘몸 바꾸기’라는 소재는 이것으로 고갈된 것은 아니라는 희망 역시 있다. 몸이 뒤바뀐 두 사람이 몸주인의 연인과 함께 있을 때 벌어지는 화면 밖의 욕망은 보여지는 것 이상의 것이다. 이것을 다만 청소년 등급의 코미디의 소재로만 낭비하기에는 아깝다는 은밀한 상상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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