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희망과 냉소의 상반된 테마가 뒤엉킨 춤곡, <바람의 전설>
2004-04-07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우연히 춤의 세계에 입문해 최고의 제비로 인정받던 남자 박풍식의 흥망성쇠

‘춤영화’ 하면 흔히 연상되는 스토리가 있다. 춤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 갖은 어려움을 뚫고 댄스경연대회에 나가 1등을 하거나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 <플래시 댄스> <더티 댄싱> <댄싱 히어로> 등 수많은 영화로 익숙한 이 패턴은 춤을 구애의 방식으로, 흥겨운 축제로, 직업으로, 스포츠로 이해했던 서구영화의 전통을 보여준다. <바람의 전설>은 그와 반대다. 철저하게 한국적 맥락에 서 있는 이 영화는 ‘춤’ 하면 ‘제비’를 떠올리는 오랜 습관에 기댄다. 우연히 춤의 세계에 뛰어들어 최고의 제비로 인정받았던 한 사내, 그의 성공과 쇠락이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여기서 제목에 등장하는 ‘바람’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불륜’을 뜻하는 ‘바람’이자 ‘춤바람’의 그 ‘바람’이다.

처음엔 순전히 춤바람에서 시작됐다. 주인공 박풍식(이성재)은 제비짓을 해서 먹고사는 친구 송만수(김수로)의 권유로 춤을 배운다. 첫 스텝을 밟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경험을 하는 풍식. 5년간 전국을 돌며 춤의 스승을 찾아다닌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춤솜씨로 서울 카바레에 입성한다. 풍식의 춤에 넋을 잃은 여인들이 돈다발을 갖다바치면서 풍식은 최고의 제비로 주가를 높이고 가난에 찌들었던 풍식의 집은 정원에 골프코스가 설치된 그림 같은 저택이 된다. 그러나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던가? 풍식은 카바레에서 만난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바람의 전설>의 원작은 성석제의 단편소설 <소설 쓰는 인간>이다. 앞서 요약한 줄거리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화에는 소설에 없던 인물 송연화(박솔미)가 등장한다. 형사인 연화는 서장 부인과 바람을 피운 풍식의 자백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인 풍식에게 접근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란을 느끼는 연화, 무료한 삶에 피로를 느끼던 그녀는 풍식에게 춤을 배우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는 걸 경험한다. 풍식이 처음 춤을 접했던 것 같은 전율이 연화가 풍식의 삶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원작에 없는 연화의 이야기는 <바람의 전설>을 이중 구조의 영화로 만들어낸다. 먼저 풍식이 연화에게 자기 삶의 궤적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내레이션은 풍식이 과연 예술가인가, 제비인가에 맞춰진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어리석은 한 인간을 보여준다. 타인의 순정을 무참히 짓밟은 대가로 자신의 순정이 짓이겨지는 이 남자는 일류가 되고 싶었지만 결코 삼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바람이 그를 데려간 곳은 결국 비참한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를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풍식의 모든 것이 무너진 곳에 연화를 데려가 함께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은 연화와 풍식의 로맨스를 덧붙인다. 대부분의 댄스영화처럼 <바람의 전설>도 절망이 아니라 희망쪽으로 스텝을 옮기고 싶은 것이다.

이게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건 성석제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설 쓰는 인간>은 삼류인생의 허영심과 기만을 꼬집는 이야기이고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 냉정한 시선이 만들어낸 소설이다. 그러나 <바람의 전설>은 삶의 활기를 되찾아주는 춤에 관한 영화다. <쉘 위 댄스>처럼 춤이 있어 다시 세상과 맞설 용기를 내는 사람의 이야기다. 결국 영화는 상반된 테마가 뒤엉킨 춤곡이 된다. 어느 장단에 발을 옮겨야 할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긴 상영시간에도 풍식이 어떤 인물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풍식은 지탄받아 마땅한 인간으로도, 그저 상황에 떠밀려 못된 짓을 한 인간으로도 보인다. 혹시 바람 혹은 불륜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서라면 너무 멀리 에둘러 갔다. 이 영화는 춤바람이나 불륜을 직시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풍식과 연화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에 있는 것도 아니다. 둘의 교감은 어렴풋이 짐작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바람의 전설>은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정우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를 한두편은 봤을 테지만 <바람의 전설>은 묘하게도 자신이 시나리오만 썼던 영화들과 상당히 다르다. <바람의 전설>에서 박정우의 코미디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은 등장인물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척이나 고단한 삶을 살았을 여인인 풍식의 아내나 풍식을 만나 삶의 출구를 발견한 중년 부인 경순은 단지 희화화될 뿐이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조연들을 다소 희생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에선 그게 모두 중년 여인들이다. 불쾌한 편견에 기반한 설정이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그래도 웬만큼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주인공 풍식이나 연화도 그리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만 그렇다.

:: 박정우 감독 인터뷰

내 기준에서 풍식은 예술가다

원작소설 <소설 쓰는 인간>에는 연화의 이야기가 없다. 연화를 등장시킨 점이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인데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1인칭 시점에서 회고하듯 풀어도 되지만 영화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자면 매개체가 필요했다. 그래서 연화의 시각과 감정을 통해 풍식을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화 입장에선 풍식이 제비처럼 보일 때도 있고 감정적으로 동화될 때도 있다. 소설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왕제비라고 말하지만 나는 풍식을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풍식을 예술가로 묘사하기 위해서도 연화가 필요했다.

연화의 이야기가 등장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냉소적인 시선의 소설과 달리 영화를 따뜻한 감정으로 끌고가고 싶어서 아니었나.

이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사람들이 춤을 좋게 봐줬으면 해서다. 춤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계기가 됐으면 했으니까 연화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풍식을 예술가라고 믿는 입장인가.

그렇다. 난 남들이 예술이 뭐냐고 물으면 어떤 사람이 뭔가에 끌려서 죽기 살기로 매진한 결과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풍식은 그런 사람이다. 남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내 기준에서 풍식은 예술가다.

하지만 풍식의 정체는 다소 모호하다. 실제로 제비짓을 한다.

아주 순수하게 그릴 수도 있겠지만 춤이 갖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영화의 바탕에 깔아놓고 싶었다. 아무튼 풍식은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자기 행동에 나쁜 의도가 있던 건 아닌데 상황이 순수하게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걸 삐딱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게 현실 아닌가. 춤추는 자의 애환이나 갈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었지만 그 전에 음지에 있는 걸 일단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풍식은 손가락질 당할 일을 하긴 한다. 그리고 그 죗값을 치른다.

여러 등장인물 가운데 풍식의 아내를 지나치게 악녀로 그리고 있다.

초고가 나왔을 때부터 의견이 분분했던 부분인데 풍식이 집에서 뛰쳐나오게끔 하자면 필요한 인물 설정이었다. 대부분 풍식 같은 인물이 자기 꿈을 펼칠 때 발목을 잡는 건 가족문제 아닌가. 현실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타협한 게 있다면 풍식의 아내를 청순가련, 현모양처로 그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야 풍식의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될 것 같았다. 내 스타일이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등장인물이 보통 사람보다 사려깊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편이다.

작가 시절 영화들과 연출한 작품이 상당히 다르다.

작가생활 할 때 했던 코미디를 계속한다면 감독이 되는 의미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내 기본적인 취향도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아니다. 신인감독으로서 내가 어떤 놈인지 내 능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촬영부터 편집까지 이 영화는 전적으로 내 맘대로 했다. 상영시간이 2시간 넘는 것도 그래서다. 강우석 감독이 3시간 가까운 편집본을 좋게 봤고 내게 많은 걸 맡겼다. <실미도>로 바빠서 내 영화에 신경을 못 쓰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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