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시나리오가 통쾌하더군요. 1인 2역이 부담되기는 했지만 주저없이 선택했어요." `멜로 배우의 대명사'로 꼽혀오던 박신양(36)이 최근 들어 `조폭 코미디'인 <달마야 놀자>와 공포영화 으로 잇따라 변신을 시도한데 이어 이번에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등장한다. 15일 개봉할 <범죄의 재구성>(제작 싸이더스)은 1996년 구미 한국은행 사기사건에서 착안한 범죄 추리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멋지게 `한탕'에 성공한 뒤 이 돈을 둘러싸고 사기범 일당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신양은 사기 전과로 출소한 뒤 한국은행을 털 계획을 세우는 최창혁과 그의 형 최창호 역을 맡았다. 현란한 입담과 고도의 심리전에 능한 배짱 좋은 사기꾼과 헌책방을 운영하는 조용하고 말수 적은 무명 소설가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한 스크린에서 보여준다.
"당초 계획은 동생 분량을 다 찍고 형 분량을 나중에 찍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뒤섞이게 됐어요. 들떠 있는 표정으로 떠벌리는 연기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어눌하고 조용한 모습을 연기하려니까 빨리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지요."
박신양에게 상반된 연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특수분장을 견디는 일이었다. 형 모습으로 둔갑하기 위해서는 프로스테틱스라고 불리는 특수분장을 4시간이 넘도록 해야 하는데 다른 배우보다 4시간 먼저 일어나 현장으로 가야 하고, 4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고, 연기하는 동안 답답함을 참아내야 했다.
"특수분장을 하고 촬영한 날이 전체 70여회 가운데 20여회쯤 됩니다. 이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10시간을 넘게 촬영할 수가 없어요. 오래 있으면 숨이 막히거든요. 또 얼굴에 붙여놓은 실리콘 때문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요."
95년 <유리>를 시작으로 <편지>, <약속>, <달마야 놀자> 등 많은 흥행작에 출연 박신양이지만 어느 때보다 표정이 밝다. 흥행에 대한 기대를 떠나 신인 최동훈 감독을 비롯해 염정아, 백윤식, 이문식, 박원상, 김상호, 천호진 등 선후배 배우들과 함께 한 현장 분위기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기꾼계의 `드림팀'처럼 제작진 모두 든든하고 좋았습니다. 초반부에 20∼30%를 찍을 때까지 기대 이상으로 진행이 매끄럽고 훌륭해 오히려 `언제까지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까지 들더군요. `호사다마'라고 혹시 부정탈까봐 입밖에는 내지 않았는데 그런 분위기가 끝까지 가더라구요. 처음 느껴본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면 영화배우로서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