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스크린’ 바람 났어요, <바람의 전설> 박솔미
2004-04-08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겨울연가>의 오채린, <올인>의 서진희. 두 인물 모두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자신감이 넘친다. 4살 때부터 고2 때까지 피아노를 배우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나머지 생을 다 보내야 하는 것이 싫어서” 과감하게 피아노를 그만둔 뒤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한 박솔미는 이 두편의 인기드라마에서 차갑고 도도한 인물을 연기해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박솔미의 스크린 데뷔작 <바람의 전설>의 송연화는 어떤가. “신경질적인 여자예요. 웃지도 않고,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거죠. 그러다 엔딩에는 한번 활짝 웃게 돼요.” 세상사 제맘대로 되지 않아 분통을 터트리는 터프한 여자 형사라니. 의외다.

박솔미는 의사표시가 선명하다. 사진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거리낌없이 혼잣말로 “재미있어, 재미없어”를 번갈아 되뇐다. 첫 영화 <바람의 전설>에서 송연화 역할을 ‘따낸’ 사연도 그녀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기질을 단박에 보여준다. 연화 역은 애초 내정된 배우가 있었다. 매니저는 박솔미에게 그 배우가 출연계약서에 도장을 아직 찍지 않았을 뿐이라며 단념을 권했다. 그렇다고 앉아서 당하기만 할 것인가. 박솔미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 여행을 중도에 작파했다. 함께 간 친구들은 안중에 없었다. 곧장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정우 감독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제작사 사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뒤. 박 감독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저없이 ‘그녀’를 선택했다.

‘열의’만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진 않았다. 박솔미는 첫 대본 연습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국어책 읽듯 ” 대사를 쳐서 박 감독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잡아야 할 풍식을 이해하지 못해 허둥대는 영화 속 연화처럼 촬영에 들어간 뒤에도 박솔미는 한동안 낯선 분위기와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박 감독에게조차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외에 다른 말은 붙여보지도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어느 장면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근데 연기나 감이 좋다면서 한번 더 찍자고 하신 적 있거든요. 그게 칭찬인지는 나중에 알았어요. 성재 오빠가 그런 감이 세번 정도 오면 배우 소리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현장 적응력은 늘어갔지만 엔딩장면 촬영을 견디기란 고역이었다. 눈발이 오락가락하는 악천후에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서 아주 얇은 의상과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춤을 춰야 하다니. 게다가 1∼2분만 춤춰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라틴댄스를 100여번 반복하는 동안 인내는 바닥이 났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6개월 내내 춤연습을 했던 이 배우의 머릿속은 “이렇게까지 꼭 해야 하나” 싶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근데 성재 오빠가 이런 등대 아래에서 춤을 춰볼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거예요. 그때 그 말 듣고서야 영화가 도대체 뭔가 싶더라구요. 그때서부터 진짜 고민이 시작된 거죠.” 3개월 동안의 촬영이 끝나고 난 뒤 박솔미는 박 감독에게서 1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건네받았다. “카메오는 안 시켜. 다음 작품 계약금 미리 주는 거야.” “힘든 만큼 얻는 것도 크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몸으로 깨달았다는 그녀.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 바라보고 덤벼들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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