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맘에 들었어요.” ‘양아치’에서 따온 가식없는 ‘아치’라는 이름이 맘에 들어 목소리출연을 결정했다는 류승범은 정신건강에 별점을 매긴다면 ‘★★★★★’짜리 청년이다. “튀는 멋보다는 자연스럽게 묻히는, 그러나 조용히 빛나는 멋”을 추구한다는 그의 ‘멋 철학’이며 “인간들이 초등교육만 지키고 살아도 사람답게 살 텐데”라는 노인네 같은 걱정을 듣다보면 ‘생각없는 양아치’라는 잘못된 선입견이 금세 교정된다.
“배우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함정에 빠지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때부터 무서움이나 두려움이 생길 것 같거든요.” 직업이 되면 싫어질 것 같아서 평생 취미생활로 연기할 거라는 그는 첫 35mm 장편작업이었던 <와이키키 브라더스> 찍으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물론 내 나이에 정답을 내린다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돼야지 배우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기계적인 기술이 꼭 정답도 아니고 연기자란 자격증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쉴새없이 늘어놓는 그의 달변이 그저 ‘말빨’이 아니라 한순간도 끊이지 않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나왔음을 의심할 수 없다. “우리 형 영화에는 동생이니까 그냥 출연하는 줄 아는데 저도 오디션 받아요.
나 역시 형 영화에 내가 적합하지 않으면 출연 안 할 수도 있는 거죠.” <죽거나 나쁘거나>를 감독했던 친형 류승완은 “어렸을 적부터 콜라 하나를 사도 ‘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논’하는 관계였고”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감독과 배우이기 때문에 일에서는 서로가 ‘쿨’해져야 하는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바닥이 나는 거라고 그는 ‘공사 구분론’을 똑부러지게 펼쳐놓는다.
<좋은 친구들>의 조 페시처럼 완전 망가진 악역, 굉장히 타락한, 정말 비열한 악역을 해보고 싶다는 류승범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바쁘다. 우선 전주에서 첫선을 보인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개봉을 앞두고 있고 <피도 눈물도 없이>와 <명랑소년과 권법소년>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두 형제가 겪는 삶의 격랑을 보여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서 동생 역으로 캐스팅돼 안방극장 아줌마들의 귀여움을 차지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