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10대 후반의 남자가 여행길에 만난 같은 또래의 남자를 죽인다. 시체를 훼손시켜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는 자기의 신분증과 옷을 남긴다. 자신이 죽은 것으로 만들어놓은 뒤 이 남자는 자기가 죽인 이의 이름과 신분을 도용해 산다. 그런 식으로 혼자 사는 남자를 골라 죽이고 신분 바꾸기를 여러차례 거듭하면서 남자는 30대가 됐고, 마침내 경찰이 한 범인에 의한 연쇄살인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수사에 나선다.
죽인 사람 행세를 하며 살아온 남자…수사관 안젤리나 졸리 낌새는 채지만…〈테이킹 라이브즈〉에서 우선 흥미를 끄는 건 사람을 죽이고 신분을 훔치며 살아가는 이 범인의 존재방식이다. 당연히 어떤 인물일까 관심이 간다. 여러 신분으로 살아왔다면 상당히 지적일 것이고,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범인이 갑자기 사람을 많이 죽이기 시작하고, 그것도 성도착증 환자의 범행인 듯한 흔적을 남긴다. 범행이 잇따라 발생한 캐나다 몬트리올의 경찰은 미국 연방수사국의 연쇄살인 전문 수사관 스콧(앤절리나 졸리)을 파견받는다. 스콧이 막 파견 온 뒤 발생한 살인 사건에 목격자가 나타난다. 사건을 경찰에 신고까지 한 제임스(에단 호크)는 자기가 범인의 얼굴을 봤다고 말한다.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처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도입부부터 중반까지, 영화는 아귀를 잘 맞추며 흘러간다. 약간만 힌트를 제공한다면, 이 범인이 갑자기 사람을 많이 죽인 건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살인들의 혐의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워 사건 수사를 종결짓기 위함이었다. 여기까진 이 범인의 범행 및 삶의 방식과 일치한다. 그런데 영화는 범인의 정체가 나타나면서, 그 캐릭터를 자세히 그리는 게 아니라 잔혹한 사이코킬러로 단순화시켜 버린다. 어릴 때 학대받으며 자랐다는 설정까지 연쇄살인 영화의 안이하고 진부한 장치에 기댄다. 그리곤 몸매 좋은 여수사관 스콧과 범인의 관계에서 영화를 풀어버린다. 범인인 줄 모르고 섹스했다가 뒤통수 맞고 다시 어쩌고 하는 식의 스릴러가 되기를 의도하는데 이미 때가 늦은 듯하다. 1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