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사진과 문신으로 기록하는 <메멘토>의 레너드, 동네 미아 찾기에 동참해 ‘내가 누구지?’를 연발하는 <니모를 찾아서>의 파란 물고기 도리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루시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1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루시가 인지하는 시점은 사고 이전과 사고 당일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헨리는 루시에게 접근하고 사랑을 예감하지만, 루시에겐 바로 전날 데이트한 헨리를, 다음날 소 닭 보듯 하는 망각의 일상이 반복된다. 헨리는 그런 루시에게 매일매일 그들의 사랑과 현실을 일깨워주기로 한다.
<첫키스만 50번째>는 설정만으로 보면, 같은 하루에 갇혀사는 남자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랑을 얻고 냉소를 걷어낸다는 이야기 <사랑의 블랙홀>을 닮아 있다. 하지만 그 ‘반복되는 하루’가 자신을 객관화하고 운명을 바꾸는 기회로 작용한 <사랑의 블랙홀>과 달리, 이 영화에선 두 남녀의 사랑에 방해물인 동시에 초강력 촉매제로 편리하게 연동된다. 천하의 바람둥이가 대답없는 메아리처럼 진척없는 사랑에 온몸을 던지는 개과천선의 과정은 별 설득력이 없어 ‘운명’ 또는 ‘업보’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던 그 순간’에 영원히 갇혀, 사랑의 유통 기한 따위 잊고 싶다는 열망이 빚어낸 판타지다. 하와이의 노을과 야자수와 바다가 조성하는 로맨틱 무드처럼 달콤하고 비현실적인 판타지.
매일 새로 시작하는 오래된 연인에 어울리는 캐스팅이랄까. <웨딩 싱어>의 천진난만한 연인 애덤 샌들러와 드루 배리모어가 다시 만나 미소를 짓고 노래를 부를 때 그 모습이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건 흠이라면 흠이다. 애덤 샌들러의 영화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짝 친구 롭 슈나이더의 화장실 유머, <반지의 제왕>에서 충복 샘으로 열연한 숀 오스틴의 충격적인(!) 변신은 주인공들의 순애보가 무거워질 만하면 수시로 치고 나오지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게 만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