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소영웅의 투박한 선전포고, <네드 켈리>
2004-04-13
글 : 김도훈
호주의 홍길동, 영웅담을 피해가다 로맨스에 발이 걸리다

네드 켈리는 19세기 호주의 전설적인 대강도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그는 로빈후드, 윌리엄 텔 그리고 우리의 홍길동처럼 지배층에 맞서 싸우며 민초들을 도왔던 영웅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할리우드의 스타 공급지로 각광받는 호주 영화계가 이 흥미진진한 인물을 가만히 놔두고 있을 리는 없었다. <네드 켈리>는 자국산 스타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획된 호주 영화계의 야심적인 웨스턴 프로젝트다. 네드 켈리에 대한 소설 <아워 선샤인>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은 그가 체포되기 직전의 5년간이다. 이 짧은 기간에 네드 켈리라는 인물을 관객에게 설득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가 발을 딛고 있었던 대지에 대한 통찰력이다. 영화는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가 묘사하는 궁핍한 이민자들의 삶은 생생하다. 호주의 대지를 메마르고 척박하게 묘사하는 미술과 촬영은 가끔 너무 과장되어 있기는 해도 적절한 박진감이 있다.

영화는 자칫 ‘영웅담’으로 빠져들기 쉬웠을 함정들도 조심스레 피해간다. 네드 켈리는 민초들의 해방을 부르짖는 전사가 아니라 잘못된 계급구조에 발을 헛디뎌 눈에 보이는 종말로 치닫는 소영웅으로 그려져 있다. 자그마한 은행을 털던 그가 소박하기 그지없는 ‘여왕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어조를 대표한다. 무식한 촌놈의 투박한 선전포고는 거대한 영웅들의 성명서보다 더욱 절절하다. 마지막 전투를 벌인 그가 동료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살아남아 감옥으로 호송되는 장면 역시 그렇다. ‘프리덤!’을 외치며 장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영웅의 면모는 여기에 없다. 그 피로한 얼굴이 호송 마차의 밖으로 조그맣게 비칠 때, 그뒤로 수년을 더 살아남아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기다렸던 25살 앳된 청년의 생애가 떠오른다.

헤스 레저와 올란도 블롬은 예쁜 얼굴 이상의 좋은 배우라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나오미 왓츠를 제물로 바친 억지 로맨스다. 의미없는 로맨스는 가슴 아픈 사랑도 계급 구조의 위선도 그 어느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영화가 기본을 충실히 해내면서도 그 이상의 것을 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쓸데없이 할리우드 웨스턴의 관습을 흉내내려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잉되고 남발된 음악과 내레이션은 영화를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만든다. 그 서툴게 배치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비뚤어진 유머감각을 좀 구사해 주었더라면, 이 할리우드의 변방에서 온 웨스턴은 좀더 빛을 발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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