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범죄의 재구성>의 염정아
2004-04-13
글 : 오정연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조금의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매 순간 그는 제 행동 속에 흠뻑 몰두해 있다. (…) 그의 행위는 몸놀림과 일치하고 몸놀림은 식욕과, 식욕은 그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 희랍 꽃항아리들의 가장 조화있는 윤곽에도 이같이 철저한 필연성은 없다.” - 장 그르니에 <고양이 물루> 중에서

좁은 철제 난간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를 보라. 무릇 완벽한 자세는 긴장과 이완의 공존에서 비롯되는 법. 대로 위를 걷는 듯 여유로운 걸음걸이는 온몸의 최말단까지 날을 세운 팽팽한 긴장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고양이에게서 다가갈 수 없는 귀기(鬼氣)만을 느낀다면 그것은 절반으로 전체를 단정짓는 오류이다. 이 종족들의 또 다른 매력은 한나절을 내처 잘 수 있는 천연덕스러운 게으름과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저없이 다가가 놀아달라며 가르릉거릴 수 있는 뻔뻔한 여유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양이에게 차가움만을 내세우며 그 누구에게도 곁을 두지 않는 인간을 고양이에 빗댄다면, 그 비유는 거짓이다. 한순간에 상대를 무장해제시켜버릴 솔직함이 없다면, 그리하여 그가 소름끼치게 매혹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데뷔 뒤 10년이 지나서야 배우의 칭호를 얻고, 이제야 연기가 너무나 재밌다고 말하는 중견배우 염정아. 완벽한 조화가 그의 육체에 있고, 필연적인 예민함이 그의 표면을 따라 흐르고, 지나온 세월들은 자신만만한 솔직함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므로 계산없이 순간적 욕망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고양이의 매력을 그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염정아의 재발견. <장화, 홍련>의 개봉을 앞두고 그에 관한 글들이 거듭해서 내세우던 키워드. 어쨌든 <장화, 홍련>이 염정아를 그 자신과 대중에게 배우로서 각인시켰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배우 염정아에 대한 모든 설명은 결국 <장화, 홍련>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의 몸. ‘나른함’이란 무릇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하는 듯 느릿느릿 쭉쭉 뻗는 온몸이 사뭇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장화, 홍련>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 염정아의 창백한 다리가 폭신한 양탄자 위로 내려지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기다란 목선이 점점 확연해지고 결국은 팽팽한 일직선을 이룬다. 그리고 나른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감지한 관객에게 원인 모를 공포가 엄습한다. 이 장면을 찍을 당시 김지운 감독의 지시는 “아… 잠이 왜 이렇게 안 깨, 라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자신도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찍었기에, 스스로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크린에서 확인하는 것은 배우 자신에게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감독님이 저에게서 잡으면 깨질 것 같은 불안함을 발견해주셨어요. 하지만 처음엔 사실 그게 뭔지 몰랐거든요.” 그가 연기했던 은주는 있으면서 없고, 가장 무기력하면서도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그야말로 애매하기 그지없는 (인물이 아닌) 설정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애매한 설정은 머리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느껴야 한다. 염정아가 가장 어려운 장면으로 꼽는 저녁식사 장면. “너무너무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 4명이 있는데 나 혼자서 그 기괴한 분위기를 이끌면서 떠들어야 했던 거였어요. 정말 잘해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한 장면이었는데, 촬영장에서 감독님도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고 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나 배우가 체험하는 순간의 느낌은 어쨌든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도 전달된다. 그가 느꼈다는 민망함과 어색함은 결국 그 장면에서 은주의 것이기도 했음을, 우리는 사후적으로 알고 있다.

<장화, 홍련>의 은주가 누군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망상이었다면, 개봉을 앞둔 <범죄의 재구성>의 인경은 염정아를 현실세계에 발붙이게 해줄 것이다. <장화, 홍련>의 팽팽한 긴장감과 짝패를 이룰 만한 것은 속이 빤히 보이는 <범죄의 재구성>의 태연자약함이다. “오후만 되면 제가 좀 나른해지거든요, 고양이같이…”라는 인경의 대사가 없어도 영화 속 염정아에게서, 나름의 유희에 집중하면서 혼자 꿍꿍이를 꾸미는 고양이가 느껴진다. 혹은 오후의 햇살 속에서 만면에 머금는 고양이의 느긋한 미소가 떠오른다. 완벽한 조화를 이룬 육체를 지녔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무미건조한 냉랭함을 남발하던 시기를 거쳐, 내밀한 예민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직후이기에 인경을 연기하는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은 새삼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연기 인생 10여년 만에 최초로 실제의 자신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역할을 맡은 염정아가 <범죄의 재구성>을 말할 때, 그 목소리는 반음 정도 높아져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인경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풍부해서 그 안에서 얼마든지 만들어갈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계속해서 타이트하게 정형화된 캐릭터들만 연기했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던 거든요. 촬영을 끝내면서는 인경과 내가 굉장히 닮게 됐다고 느꼈을 정도로 편하게 연기했어요. 애초 시나리오처럼 섹시하기만 한 여자가 아니라 좀 푼수짓도 하고, 혼자 있을 때는 어린애 같은 귀여운 캐릭터가 된 거죠.” 누아르의 비장감을 비껴가는 사기극 <범죄의 재구성>에서 염정아가 팜므파탈의 고혹적인 매력이 아닌, ‘얕은 수가 뻔히 보이는 사기꾼’의 순수한 매력을 내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 각각의 캐릭터가 확실한 남성영화 속에서 자칫 ‘보기 좋은 꽃 한 송이’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없었을까. “그런 걸 느꼈다면 처음부터 이 영화를 안 했겠죠. 하지만 전 인경이 다른 캐릭터들 사이에 충분히 잘 녹아 있다고 생각했고, 통쾌한 결말도 좋았어요.” 적어도, 앞서의 우려는 그의 몫이 아니라는 이야기.

절대로 버려지지 않는 우아함이라도 지닌 듯, 강렬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가, “나는 인터뷰할 때 왜 이렇게 멋있는 말을 못하는지 몰라, 다른 사람들 인터뷰 기사들도 좀 보면서 연구해야겠다니까”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흔히 그의 인터뷰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외의 털털함’ 혹은 ‘감춰진 솔직함’ 등의 표현은 아마도 이러한 순간을 지적한 것이었으리라. 염정아가 스스로 배우라는 자각을 가지게 된 것은 20대 후반의 일. 데뷔 이후 애매하게 지나버린 짧지 않았던 세월이 본인에게는 민감한 상처가 아닐까 하여 에둘러 시작했던 질문이 중간에 꼬리를 감춘 것은 그의 단호한 대답 때문이었다. “저는 대기만성형이거든요. 하지만 나는 스타인 적도 없었지만 무명이었던 적도 없어요. 그렇게 특별히 한 일도 없으면서 늘 그 자리를 지키면서 똑같이 애매하기도 힘들걸요. 그때 나랑 같이 있던 친구들은 돌아보면 아무도 없어요. 20대에는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의 욕심일 뿐이죠.” 지나간 일에 대한 추호의 미련도 남기지 않는 가장 솔직한 대답이다. 뒤늦은 깨달음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은 없을까 싶지만 이 역시 무색한 질문이 된다. “점점 영화에서 내 영화라는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게 되게 기분이 좋아요. 하나하나 신경이 쓰이고 책임감도 생기고. 애매했던 시기에는 아예 생각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조급할 것도 없고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뭔가를 알게 됐다는 게. 그런 재미도 몰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만 들거든요.” 고양잇과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 법. 스스로를 믿기에, 자신(自信)을 위한 근거는 필요치 않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그들의 능력이고 매력이다.

<범죄의 재구성>의 염정아에게서 관객은 전작에서 그가 보여준 빈틈없는 매력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하기에 인경이 보여주는 허술한 면들은 일말의 실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얕은 실망들은 그가 피와 살을 가진 배우로 거듭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새해는 염정아의 진짜 발견의 해가 될 거야.’ 2004년 초, 감독 김지운이 배우 염정아에게 보냈던 새해 문자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로 이루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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