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비젤은 이름도 얼굴도 익숙하지 않은 배우다. 연기를 시작한 지가 10년이 넘었고, <씬 레드 라인> <프리퀀시> 같은 수작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지만, 최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출연한 그를 ‘신인배우’로 소개한 저널도 더러 있다. 터무니없는 실수는 아니다. 제임스 카비젤은 ‘셀러브리티’ 같은 단어와는 전혀 친하지 않다. 민주당 지지자와 사이언톨로지 신도가 득세한 할리우드에서, 그는 거의 유일한 공화당 지지자이고 가톨릭이다. 아내에게 충실하고, 신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두발을 땅에 딛고, 두팔을 하늘로 쳐들고, 나무처럼 바위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까지 영화에 등장한 그 어떤 예수보다도 그는 ‘진짜’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아기처럼 천진난만하고 또 평온하다. 그렇게 순수한 영혼은 이 세상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멜 깁슨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예수 역으로 제임스 카비젤을 첫손에 꼽은 이유다. 실제로 너무 맑아서 슬프고 불안한 그의 두눈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저들은 왜 나의 적인지를 끊임없이 회의하던 병사(<씬 레드 라인>), 고인이 된 아버지와 시공간의 틈에서 조우한 아들(<프리퀀시>)은 가늘게 흔들리는 카비젤의 눈빛 때문에 살아났다. 멜 깁슨처럼 그를 ‘천상의 피조물’로 추어올리는 감독도 더러 있어서, <엔젤 아이즈>에서 그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브루노 간츠와 닮은 캐릭터를 맡았었다. 명품 의상이나 향수 모델로 딱일 법한 조각 같은 용모에서, 중세 수도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묘한 배우 카비젤은 종교적 믿음 때문에 제니퍼 로페즈, 애슐리 저드와의 러브신을 거부한 ‘비범한’ 전력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수난을 그려내면서, 짐 카비젤은 실제로 엄청난 수난을 감내해야 했다. 정신적인 고통보다 육체적인 고통이 크리라는 건 그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루 10시간 분장을 받고, 두어신 찍으면 날이 샜다. 어깨가 탈골됐고, 폐병을 앓았으며, 찰과상을 입었고, 저체온과 동상에 시달렸다. 심지어 벼락을 맞은 일도 있었다. “역할을 위한 준비? 하루에 두번씩 물 위를 걸었다. 좀 힘들더라.” ‘영화를 찍으면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도 좋을 만큼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자타공인 진지파 배우 제임스 카비젤은 제법 여유있게 눙치는 법도 배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누구보다 카비젤에게 중요한 시험대가 됐다. 멜 깁슨은 최악의 경우 카비젤 최후의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지만, 배우로서도, 자연인으로서도, 카비젤은 이 작품을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뛰어들었고, 어렵사리 해냈다. 이제 카비젤에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앞으로 한동안 “코미디 하긴 그른 것 같다”는 것이다. 지금은 믿기 힘들지만, 배우 초년병 시절엔 “코미디엔 뛰어나지만 드라마엔 약하다”는 평판을 들었다고 하니, 그가 소원하는 또 한번의 반전을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