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새영화] 택시운전사의 두집살림기 <라이어>
2004-04-20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두 여자를 다 사랑한다니까~정말로

두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여하튼 이 말이 정말이라고 우기면 십중팔구 한 여자도 옆에 남아있지 않게 될 터. 그래서 정만철(주진모)은 두 집 살림을 하면서 각각의 여자에게 다른 여자의 존재를 숨긴다. 택시 운전사인 그는 주·야간 교대근무를 핑계삼아 저녁은 이 집, 아침은 저 집 하는 식으로 하루도 빼지 않고 두 집 모두를 들러 남편 노릇을 성실히 한다. 이쯤 되면 정말 두 여자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난 두 여자 다 정말 사랑해”라는 말을 친구 한 명에게밖에 하지 못하는 그의 삶은, 그 말이 진실이라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라이어〉는 두 집 살림 하는 남자의 소동극이다. 정만철은 치밀한 시간계획으로 두 집 살림을 1년 동안 들통나지 않고 해왔다. 그런데 자기 택시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현상수배범이 탔고, 사고가 겹쳐 엉겁결에 이 범인을 자신이 붙잡은 결과가 됐다. 자기도 모르게 유명해지게 된 것이다. 유명해지면 두 집 살림 하는 자기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기를 쓰고 기자들을 피하고, 그런 만철의 태도에 경찰은 경찰대로 다른 범죄혐의를 의심한다.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들끼리 모순되는 걸 피하기 위해 만철의 친구가 만철의 아들이 되고, 급기야 만철이 동성애자가 되기까지 한다.

원작이 영국 연극인 이 영화에서 거짓말들의 얼개는 대체로 잘 짜여 있다. 개연성이 있고, 서로 모순된 거짓말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는 폭소를 자아낸다. 상투적이거나 억지스런 거짓말들이 더러 있는데, 극의 구성을 위해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에서 용인이 된다. 극의 구성이 요즘 코미디 영화들과 달리 고전적인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 배우들의 개인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등장하는 튀는 거짓말들은 좀 위태로워 보인다. 공형진, 손현주, 임현식의 코미디 연기도 9 대 1쯤의 비율로 잘 나가다가 위태로울 때가 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이 소동극에는 고급스런 의도가 담겨 있다. 이 남자는 ‘거짓말쟁이 바람둥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고, 그게 상식적이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이 상식과 이 남자의 자기 믿음 사이엔 이을 수 없는 균열이 있다. 두 여자를 향한 이 남자의 사랑이 진실할수록 그 균열은 더 커진다. 관객들로 하여금 상식에서 출발해 웃는 사이에 어느덧 균열과 마주치게 하자는 게 〈라이어〉의 의도다. 그 의도는 절반쯤 성공한다. 거짓말하기에 지친 만철이 다시 억지로 기운을 내 다른 거짓말을 만드는 모습에선 거꾸로 두 여자에 대한 만철의 사랑이 전해진다. 만철이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했다가, 그걸 번복하고 두 집 살림 한 사실을 인정하자 두 여자는 차라리 만철이 동성애자이기를 바라는 역설을 드러낸다.

급기야 동성애 흉내까지

쉴 새 없이, 가끔씩 튀는 수다 속에 그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 게 조금 아쉽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의 두번째 영화다.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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