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리어트 게임> <긴급명령> 등의 몸에 맞지 않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들로 재능을 낭비하던 호주감독 필립 노이스가 이 소설을 손에 넣은 곳은 우연히 휴가차 방문한 베트남의 호치민시였다. 그는 이 책에서 흥미진진한 가능성을 보았다. 1955년, 베트남전이 일어나기도 이전에 쓰여진 <조용한 미국인>은 수십년 동안 미국인의 트라우마가 될 베트남 전쟁의 기운을 예언하고 있었고, 거기에 현대인의 도덕적, 종교적 갈등에서 야기되는 내적 혼란을 역사 속에 삽입하는 그레이엄 그린의 장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레이엄 그린 소설의 진수들을 촘촘하게 제대로 배치했다. 영국인 기자 파울러는 그레이엄 그린 소설의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그는 영국인으로서의 냉정한 태도와 세계관을 벗어던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혼해주지 않는 영국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 아내, 자신과는 다르게 활달하고 직접적인 세계관을 지닌 미국인 젊은이, 두 인물은 젊은 베트남 연인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지 못하는 늙은 영국인의 종교적, 정치적인 갈등을 상징한다. 영화가 천천히 진행되면서 관객은 개인과 세계의 관계가 뒤얽히는 무대 속으로 파울러의 목소리를 따라 조용히 이끌려간다. 영화를 관통하는 관조적인 목소리는 그린의 원작마저 살짝 뛰어넘는 지적인 우아함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통속적인 스릴러의 형식과 흥미롭게 만난다.
사실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들은 영화화하기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닐 조던의 <애수>는 그레이엄 그린의 원작이 지닌 힘을 스크린에 옮기면서 잃어버린 예다. 필립 노이스는 <위험한 관계>를 각색했던 작가 크리스토퍼 햄튼의 힘있는 각색으로 그 한계를 넘어선다. 크리스토퍼 햄튼은 <조용한 미국인>을 각색하면서 “그레이엄 소설의 각색이 힘든 이유는 소설로 봤을 때는 그것이 너무도 명확하고 쉬워 보인다는 점이다. 그레이엄이 주로 사용하는 내레이션을, 영화 속에서 캐릭터에게 독립적인 스토리를 줌으로서 내러티브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고 이야기했다. 결과물을 놓고 보았을 때 그 모든 것은 아름답고 조화롭게 구현되었다. 영화의 또 다른 공로자는 촬영을 맡은 크리스토퍼 도일이다. 그는 습하고 끈적끈적한 베트남의 공기를 카메라에 그대로 묘사해낸다. 그의 카메라가 담아내는 사이공은 때때로 황홀할 만큼의 쓸쓸한 아름다움이 드리워져 있다. 그 유려한 카메라의 시선에서 오리엔탈리즘에의 의심을 지울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가 왕가위를 비롯한 많은 아시아 감독들과 작업해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그레이엄 그린 자신이 캐스팅했더라도 부족했을, 더없이 잘 캐스팅된 배우들에 의해 생생한 인간미를 부여받았다. <미이라>의 브랜든 프레이저는 <갓 앤 몬스터> 이후 가장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마이클 케인의 연기는 ‘아름답다’는 칭송이 필요할 정도다. 마이클 케인은 감독 필립 노이스가 영화에 끼친 영향력 그 이상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드리운다. 젊은 여인을 빼앗긴 노쇠하고 지치고 냉소적인,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불안을 목도하는 영국인 기자 역은 마이클 케인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나 깊은 울림을 지닌 그의 목소리가 영화 전체의 내레이션으로 깔리면, ‘캐릭터 내부와 외부의 혼란과 갈등이 뒤섞임’을 표현하는 소설만이 가능할 어법까지 그대로 마술처럼 스크린에 재현된다. 이 작품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가 상을 놓친 것은 진심으로 아쉬운 일이다.
많은 장점들을 풍요롭게 지니고 있는 <콰이어트 아메리칸>은 쉽게 우리를 찾아오는 그런 종류의 영화가 아니다. 캐롤 리드 감독, 오슨 웰스 주연의 <제3의 사나이> 이후 그레이엄 그린 작품을 이처럼 제대로 스크린에 옮겨놓은 작품도 흔치 않았다.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없이 아시아를 담는 <콰이어트 아메리칸>의 정갈하고 관조적인 정치적, 개인적 시선과 그것을 담아내는 맛깔스런 스릴러와 로맨스의 힘은 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꽤나 수난을 겪어왔다. <콰이어트 아메리칸>은 베트남전에서 미국인들이 벌인 정치적 술수들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개봉이 9·11 이후로 한없이 연기된 적이 있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소설 <조용한 미국인>은 조셉 맨케비치 감독에 의해 58년에 이미 한번 영화화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미국인을 애국자로, 영국인 기자를 악한으로 묘사하면서 소설을 완벽하게 모독했었다. 다행히도 그레이엄 그린은 필립 노이스의 <콰이어트 아메리칸>으로 그 굴욕적인 작품모독을 저승에서나마 잊어도 될 듯하다. 그러고보니 미국에서의 수난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 영화는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하기 위해 잠시 동안만 국내 개봉을 하게 된다. 한국영화 1천만 시대에 박수치고 감격하는 관객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면, <콰이어트 아메리칸> 같은 훌륭한 외화들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급속하게 사라져가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