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의 심정으로 개봉을 기다려요"
굳이 주연과 조연배우를 따지기는 뭐하지만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조연의 몫이 큰 경우가 많다. <파이란>에서 양아치 경수가 없었다면 처절하게 무시당하는 주인공 강재가 없었을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부대원들에 웃음을 주던 병사 영만이 없었다면 영화는 건조한 전쟁영화가 됐을지 모른다.
23일 개봉하는 <라이어>를 본 관객들의 머리 속에는 배우 공형진(35)의 대표작이 하나가 더 추가가 될 듯하다. 무심코 던진 작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은 주인공 만철(주진모)이 벌이는 거짓말의 성찬(盛饌)에 한몫 단단히 하는 단짝 친구 상구.
상구 역은 감독의 말을 빌리면 영화사 직원 모두가 만장일치로 공형진을 생각했을 정도로 그에게는 몸에 딱 맞는 옷처럼 보인다. 연기 '좀' 하는 배우인 것은 이미 짐작했다 하더라고 영화 속에서 공형진이 상구의 직업인 백수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나 어리버리 거짓말을 뻥튀기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 배우가 한참 물이 올랐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시험을 기다리는 수험생 심정으로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는 <라이어>를 "촬영장 분위기 즐겁기로는 그동안 출연작 중 손에 꼽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감독님(김경형)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멍석을 잘 깔아줬거든요. 게다가 임현식 선배님(김 기자)이나 손현주 선배(박 형사)의 애드리브 연기가 테이크마다 달라질 정도니 웃느라 정신이 없었죠. (주)진모도 같은 소속사 출신에 평소 살갑게 지내던 터라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줄거리가 '거짓말의 대향연'이라면 배우들의 연기는 '애드리브의 대향연'이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영화는 배우들의 즉흥 연기를 곳곳에 담고 있다. 영화 속 상구가 두 집 살림을 하는 친구 만철을 부러워하며 바닥에 일일 생활계획표를 만드는 것은 그가 낸 아이디어라고. 빈정거리며 박 형사의 약을 올리는 장면이나 만철의 아내 명순을 속이며 거짓말하는 신의 대사도 그의 즉흥연기에서 나왔다.
그는 "현장 분위기에서 호흡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애드리브가 나오게 된다"고 설명하면서도 "돋보이기 위해 과장된 대사나 설정이라면 애드리브가 오히려 독이 된다"고 주의했다. 눈에 많이 띄거나 튀어보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는 설명이다.
<라이어>에 출연한 것은 김경형 감독과 원작 연극인 '심바새매' 덕이 크다. 김 감독은 그의 데뷔작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90년)의 조감독 출신. 이후 두 사람은 우연히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촬영장에서 다시 만났고 다음 작품에서 같이 일하기로 약속했다. 여기에 '심바새매'는 그가 다 합쳐 세 번이나 봤을 정도로 재미있게 감상한 연극이었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느냐고 묻자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역할이지만 그 악함을 이해시킬 수 있는 역"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어떤 역이든 일단 맡으면 그럴싸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 연기를 하고 싶느냐고요? 손으로 밥숟가락 들 힘이 있을 때까지는 언제까지 든 연기자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