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죄없는 소녀들의 탈출기, <막달레나 시스터즈>
2004-05-04
글 : 김혜리
교회로부터 착취와 능욕을 통해 속죄하기를 강요당한 죄없는 소녀들의 탈출기

1960년대 아일랜드에는 일명 ‘막달레나 세탁소’로 불리는 가톨릭 교회가 후원하는 여성 수용시설이 있었다. 모든 죄지은 여자들의 어머니인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딴 이 기관은 교회의 견지에서 타락한 여자는 물론 타락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여자들을 감금하고 안식일도 없이 세탁부로 부려먹었다. 피터 멀랜 감독은 막달레나의 ‘자매’들 가운데 아버지의 묵인과 교회 신부의 주도로, 같은 날 유괴된 세명의 10대 소녀를 주시한다. 그들은 무슨 짓을 했던가. 마가렛은 사촌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발설했다는 죄를, 버나뎃은 남다른 미모가 동네 사내애들을 자극했다는 죄를, 로즈는 처녀 몸으로 아기를 낳았다는 죄를 지었다. 처음 얼마간 마가렛은 자신의 감금을 착오라고 믿고 로즈는 슬픔으로 말을 잃고 버나뎃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탈출한 동료가 가족의 품에 안기기는커녕 아비에게 붙들려 도로 끌려온 날, 그들의 절망은 딱딱한 암종이 된다.

믿기지 않는 실화지만, 최후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1996년에야 문을 닫았다. 하긴 오늘날에도 세상에는 적당한 강압과 폭력이 “사람을 만든다”는 믿음이 버젓이 존재한다. 그런데 <막달레나 시스터즈>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무고한 인간을 경제적, 성적 노예로 착취하는 폭력의 강도가 아니라, 그런 폭력이 신앙과 감쪽같이 공존하는 천연덕스러운 매너다. 수녀들은 심심풀이로 소녀들을 벗겨 젖가슴와 음모를 품평하고 매질을 하며 자비를 논한다. 이 영화에서 최악의 공포는 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둔감함이다.

교회의 불평 속에서 2002년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받은 <막달레나 시스터즈>는 둔탁한 분노가 빚어낸 근육질의 영화다. 피터 멀랜 감독에게는 더 세게 보이려는 분장도, 또는 좀더 세련되고 균형잡힌 사색을 담으려는 전략도 없다. “악인도 인간이었네” 식의 자상한 관찰도 없다. 이토록 체계적인 착취와 강간의 범죄에는 맥락 어쩌고하는 변명이 가당치 않다는 듯, 완곡어법 따위는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외치듯 단호하다. 바로 그 때문에 <막달레나 시스터즈>는 벌거벗겨진 소녀들의 상처난 육체처럼 미숙하지만 잊기 어렵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오금이 저리고 코끝을 감도는 차가운 빨래의 시큼한 비린내가 구역질을 동한다. 그러므로 버나뎃과 로즈가 마침내 수녀들을 공격하는 순간 폭발하는 동물적 카타르시스는, 당신이 영화의 주문에 제대로 따라왔다는 징표다. 피터 멀랜 감독이 생산하고 싶었던 것은 성찰이 아니라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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