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인공 김태우(33)를 만난 압구정동의 한 카페는 홍상수 감독이 애용한다는 장소였다. 홍상수 감독의 열혈팬으로 알려진 김태우도 이곳에서 홍상수 감독을 만났고, 함께 술도 마셨다. 이제 영화는 그의 손을 떠났지만 홍 감독과의 “즐거웠던” 작업은 그에게 아직도 현재형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했던 거니까 개인적으로는 전혀 몰랐죠. 만나기 전에는 차갑거나 아니면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저랑 굉장히 잘 맞았어요. 예상 외로(웃음) 건강한 거, 긍정적인 거, 밝은 거 좋아하는 게 저와 비슷했죠.”
그럼에도 반듯한 모범생 이미지가 강한 배우 김태우와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왠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생각은 영화를 보기 전까지의 선입견 같은 거지만. “음, 이를테면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거니까 지키는 것뿐인데 그런 게 저를 모범생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게 모범생 아닌가요” 되묻자 “모범생 맞아요, 저” 웃으며 덧붙인다. “헌준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죠. 선화를 사랑했지만 자기 갈 길 가는데 선화를 배려하는 것도 아니고, 선화를 만나러 간 이유도 죄책감이나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고, 또 헤어지고 나서도 별로 보고 싶어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헌준이 나쁜 사람도 아니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헌준의 모습이 조금씩 있고 문득 공감하게 되는 되는 거죠. 저한테 감독님 영화의 매력은 그런 점인 것 같아요.”
그는 이번 작업이 “갈 때는 가벼운데 올 때는 무지 피곤했다”고 기억한다. “저는 원체 준비를 많이 해가는 스타일인데 뚜렷한 대본 없이 상황만 가지고 촬영 현장에 가야 하니 처음에는 두렵더라고요. 태연한 척했지만 내가 제대로 하는 건지 파악도 잘 안 되고. 그런데 거기엔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어요. 대신 대부분 롱테이크인 장면을 20~30번씩, 그것도 매번 날것처럼 가야 하니까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해서 촬영이 끝나면 파김치가 됐죠.” 집중력과 함께 여유는 그가 이번 작업에서 배운 두 가지다. “어떤 술자리에서 감독님이 ‘배우가 연기하려고 할 때가 제일 보기 싫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저는 대본 열심히 보면서 공부하는 타입이었는데 그것보다 연기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죠. 갇힌 연기를 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 같은 거.”
홍상수 감독은 유독 그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음주 장면을 배우들에게 실제 술을 마시게 하면서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물어봤다. 사실인지. 얼마나 마셨는지. “에이, 그럴 리가 있나요 물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촬영 전에 조금씩 마시죠. 근데 화면에 소주병 네 개 나온다고 네 병 다 실제로 마신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그거 다 물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