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브래드 피트 주연 <트로이>, 언론에 최초 공개
2004-05-11
글 : 고일권

올해 첫 포문을 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로이>가 11일 오후 종로의 한 극장에서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트로이>는 블록버스터 시즌의 신호탄인데다가 <오션스 일레븐> 이후 오랜만에 복귀하는 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더욱 화제가 됐던 작품. <퍼펙트 스톰>의 볼프강 페터슨 감독이 재현한 3천년전의 '트로이'는 1만2천평 규모로 재건된 트로이성 세트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장면촬영, 고증에 완벽을 기한 궁중의상만으로도 『일리아드』속의 신화로 관객을 안내한다. 브래드 피트가 불세출의 영웅 아킬레스로 등장하는 <트로이>는 어떤 모습일까? 몇가지 팁을 통해 그 안을 따라가본다.

Scale

<트로이>의 제작비는 약2억불. 어마어마한 제작비에 걸맞게 지워진 세트도, 동원된 엑스트라도, 스펙터클한 전투씬도 블록버스터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제작진은 터키에서 발굴된 트로이 유적지의 고증자료를 기반으로 전투가 주로 이루어지는 '트로이성'을 실제로 말타에 지었다. 하지만 말타에는 수천척의 그리스 연합 함대가 상륙하는 트로이 해변을 담아낼 곳이 없어 끝없는 해변과 7만5천명의 병사가 뒤엉킬만한 벌판을 찾아 멕시코에서 이 장면을 별도로 찍기도 하였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목마는 실제로 제작진이 건물 4층 높이로 제작한 목조물. <트로이> 미술팀에 의해 재창조된 웅장한 이 목마는 '트로이성' 세트와 더불어 영화의 스케일을 가늠하게 해준다. 영화의 핵심이 되는 전투씬은 대부분 드넓은 벌판에서 벌어지는데 동원된 엑스트라와 전장의 규모는 <글라디에이터>를 능가하는 물량공세를 보여준다.

Story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 때문에 트로이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의 <트로이>는 2시간 45분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엔 드라마의 얼개가 다소 느슨한 편이다. 영화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트로이로 데려오자, 헬레네의 남편인 메넬라오스 왕이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를 공격한다는 기둥 줄거리를 평면적으로 펼쳐놓는다. 페터슨 감독은 호머의『일리아드』를 충실히 복제하기보다는 인물들간의 드라마에 방점을 두었다. 각각의 인물들은 혈육지정과 운우지정을 나누는 휴머니스트들로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내러티브에 인물들의 드라마는 융화되지 못하고 감정의 굴곡은 파도친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어느정도 예견된 감독의 의도였다. 페터슨 감독은 호머의『일리아드』가 전쟁의 참혹함만을 묘사한 탓에 휴먼드라마가 휘발되었다고 판단해 상당부분 드라마를 보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65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충분했던 탓인지 과잉으로 넘치는 드라마는 영화의 완결구조 속으로 편입되지 못한다.

Main Character
브래드 피트(아킬레스 역)

밋밋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활력을 주는 것은 스펙터클한 전투씬보다도 전장의 영웅 아킬레스라는 인물이다. 아킬레스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전쟁영웅이기도 하지만 트로이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를 사랑할때는 세상에 둘도없는 애틋한 남자이기도 하다. 또 전쟁을 통해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하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는 이 역할을 완벽하게 그려내었다.

브래드 피트의 공헌은 탁월하게 성취한 아킬레스의 성공적인 내면화 연기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몸짱'으로 돌아온 브래드 피트는 40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인 바디 라인과 단단한 근육을 뽐낸다. 그 몸매에 권상우도 울고 갈 지경이다. 게다가 그 날것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현란한 액션이라니.

에릭 바나(헥토르 역)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장남이자 트로이 총사령관인 헥토르 역시 남성성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신화에 따르면 헥토르는 아킬레스 다음가는 그리스의 넘버 투 용장 아이아스와 1대1로 싸웠으나 결판이 나지 않아 서로 선물을 교환하고 헤어졌을 정도로 그 용맹함이 뛰어난 영웅이다. <헐크>로 친숙한 에릭 바나는 브래드 피트 못지 않은 용맹함을 과시하면서 가족을 끔찍히 아끼고 사랑하는 부드러운 역할의 헥토르를 십분 소화해 내었다.

올랜드 블룸(파리스 역)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레골라스 팬들에게는 <트로이>의 올랜드 블룸이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트로이>에서 올랜드 블룸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를 트로이로 빼내 전쟁을 자초하는 인물이자 메넬라오스와의 대전에서는 뒷꽁무니를 빼는 유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에게는 형 헥토르 같은 용맹함도, 명예를 지키며 죽을 용기도 없다. 오로지 감당못할 사랑의 감정만 있을 뿐이다. <트로이>에서도 곧잘 활을 쏘긴 하지만 역시 <반지의 제왕>에 비길바는 못된다.

베를린에서 열린 시사회장에서 페터슨 감독은 3천년전의 트로이 전쟁과 지금의 이라크 전쟁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수없이 돌았어도 인간의 광기와 탐욕은 변한게 없다는 뜻일게다. 어쩌면 감독은 <트로이>에 그런 전쟁의 부조리를 담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로이>를 보면서 이라크 전쟁을 오버랩 할 관객이 얼마나 될까. 스펙터클한 전투씬과 브래드 피트의 매력이 무기인 영화. <트로이>는 그 수준의 희열만 제공해 주지만 그 정도면 블록버스터로는 합격점인지도 모른다. 워너 브라더스 수입, 배급. 5월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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