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 안 속는 동료들 때문에 답답했던 셀린느, 그 영화에서 절대 말해선 안 될 비밀을 결국 털어놓고야 만다. “들어봐, 앨리스. 거긴 정말 원더랜드라니깐!” 이키! 앨리스조차 신기해할 곳이라니!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 배를 타다>와 구로사와 기요시의 <간다가와 음란전쟁>은 정말로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동화와 미스터리와 비극이 조합된 미로의 끝에서 나쁜 어른들을 저 세상으로 떠내려보내거나 시궁창에 내던져버린다.
<셀린느와 줄리 배를 타다>는 매번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시작한다. 소녀에겐 엄마가 없다. 아빠와 그를 사랑하는 이모와 유모, 그중 누군가의 정염(아니면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소녀는 살해의 위험에 빠져 있다. 셀린느와 줄리는 소녀를 구해야만 한다. 둘은 ‘기억의 사탕’에 의존해 이야기를 맞추고, 이상한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모험을 반복한다. <간다가와 음란전쟁>은 매번 ‘그리고 다음날 밤’에 시작한다. 소년에겐 아빠가 없다. 소년은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아니면 다른 알 수 없는 이유)로 엄마와 성관계를 가져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두명의 몸파는 여인은 소년을 구하기로 한다. 둘은 ‘망원경’으로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이상한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모험을 반복한다.
이쯤되면 ‘여자는(혹은 언니와 누나는) 소년과 소녀의 미래(를 구하는 천사)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것이 <셀린느와 줄리 배를 타다>처럼 한낮의 벤치에서 꾸는 꿈이 되었건, 아니면 <간다가와 음란전쟁>처럼 현실에 대한 희극적 비판이 되었건 간에 상관없이, 두 작품의 묘미는 즐거운 ‘상상의 세계’에 있다. 물론 두 작품은 바보 할리우드가 종종 그랬듯 그 세계를 비주얼에서 찾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리베트와 구로사와는 그것이 ‘상상력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동반한 이미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양면 거울 같은 두 작품을 통해 상상에는 귀천이 없음이 재확인된다. 단, <셀린느와 줄리 배를 타다>가 환상과 환영을 명상으로 이끌어갔던 경지를 <간다가와 음란전쟁>에서 찾는다면 도둑이다. 대신 돈없던 감독의 익살과 농담이 빈곳을 메우고 있는걸. 이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