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베를린] 독일의 홍상수도 칸 진출했다
2004-05-17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 11년 만에 칸 진출 이루다

1970년 오스트리아 출생. 비엔나대학에서 물리학 및 신경의학 전공. 쾰른미디어전문대학에서 영화수업. 2001년 졸업작품 <순백의 황홀경>으로 독일 막스 오퓔스상 및 퍼스트 스탭 어워드 수상. 11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독일영화 <풍요로운 세월은 흘러가고>의 감독 한스 바인가르트너의 약력이다. 바인가르트너는 올해 칸 경쟁부문에 참가한 한국 홍상수 감독의 독일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창조의 즉흥성 내지 순간성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점이 특히 닮아 있다. 이 감독에게 시나리오란 존재하지 않는다. 큰 가닥만 잡은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하며, 카메라 돌아가기 전 대사라도 끼적거려오면 다행이다. 도그마 감독들처럼 조명도 세트도 거부하는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배우들과의 대화다. 캐스팅을 마치면 배우들과 거의 공생(?)하며 이들의 알짜배기 잠재력을 빨아낸다. 이런 공생 내지 술판에 예산 대부분을 소비해 조명이나 세트에 지출할 여유가 없다는 변을 내세운다.

이 괴짜가 11년 만에 독일영화 칸 진출이란 성과를 이뤄냈다. <풍요로운 세월은 흘러가고>는 얀, 쥴과 페터라는 세 청춘남녀가 빚어내는 삼각관계로,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최근 독일영화답지 않게 개인적인 스토리를 사회적 의미로까지 승화시키는 역동성을 발휘했다”며 선정이유를 밝혔다. <굿바이 레닌>의 효자 다니엘 브륄은 말없는 몽상가 얀으로, 터키계 배우 슈티페 에르체크가 매력적인 건달 페터로, 율리아 옌취는 수줍지만 정의를 위해서라면 용감무쌍한 아가씨 쥴로 등장한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이 작품의 편집에만 장장 6개월을 투자했다. 올해 초 베를린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당시 진도가 3시간짜리 버전까지만 나간 상태라 베를린을 포기했다.

11년 만에 칸 입성이라는 숙제를 놓고 독일 감독 4명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바인가르트너 외에 <아그네스와 형제들>의 오스카 뢸러, <에델바이스 해적>의 니커 폰 글라소와 <제9요일>의 폴커 슐뢴도르프가 그들이다.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이자 독일영화의 거장 슐뢴도르프의 <제9요일>은 나치에 의해 다카우 유대인 수용소에 강제 휴가를 떠난 신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제9요일>의 칸 진출은 한동안 기정사실로 여겨졌으나 선정위원회는 결국 바인가르트너를 택했다. 작품성보다는 10년 넘게 외면해온 독일영화에 시선을 다시 돌리면서 칸의 단골손님인 늙은 거장을 택하기가 난처했으리라.

현재 독일 영화계 선두주자로 각광받는 바인가르트너 감독이지만 언론플레이에 대한 무관심과 무능력은 치명타로 간주된다. 사진찍기도 꺼린다는 이 감독을 만나보고 싶다면 <비포 선라이즈>를 보실 것.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찾는 비엔나 카페 구석에서 모카를 홀짝이는 남자, 바로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이다. 베를린=진화영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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