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칸 2004]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공식상영 및 기자회견
2004-05-18
글 : 김도훈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프랑스는 “홍상수”를 사랑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상영과 전후에 배치돼 단촐한 분위기에서 진행

홍상수 감독에 대한 프랑스의 지지는 절대적인 수준에 가깝다. 프랑스의 기자, 배급 및 제작자,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칸에서 만난 관계자들의 홍 감독에 대한 호감이 천편일률적이라고 느껴질 정도. 물론 이것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이하 <여자는…>)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질 홍상수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것이다. 특히 영화제 개막 직후 <씨네21>과 인터뷰한 MK2 대표 마린 칼미츠의 언급이 인상적이다. “홍상수 감독은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을 줄 알고, 다른 이들에게 민감하며 주의깊다.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현재 영화계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중의 한명이다. 아시아에선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 본다. 나는 그가 조만간 황금종려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MK2가 <여자는…>에 투자한 공동제작사이고 칼미츠가 프로듀서로 이 영화의 크레딧에 올라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지 발언은 당연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그는 키에슬로프스키, 알랭 레네, 루이 말, 타비아니 형제, 아르투로 립스테인, 미카엘 하네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의 거장을 ‘발견’해온 인물이다. 이번 칸에도 <여자는…>이외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의 영화 2편, 비평가 주간 개막작 등 5편을 진출시켰고,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과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 등 3편을 복원해 상영했다.

특히 칼미츠는 이 인터뷰에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앞으로 세편 더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홍상수 감독을 세계적 대가로 만들겠다는 의지인 셈.

세계 기자 반응은 <올드 보이>에 비해 다소 냉담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16일 저녁 7시30분(현지시각) 열린 <여자는…>의 기사 시사회 반응은 의외였다. 무엇보다 박수 소리가 <올드 보이>에 비해 현저히 작았다. 시사회 직후 만난 중국 상하이 의 첸첸 기자는 “재밌게 봤다. 특히 미묘한 감정선들을 흥미롭게 잡아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서구인들이 이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문화적 차이가 아주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미국 제르미 매튜스 <데일리 유타 클로니클> 기자는 “전반부의 건조한 유머는 가끔씩 재미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이해가 안된다. 이야기가 파악이 안된다. 특히 인물들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둘렀다.

다음날 가진 공식 기자회견은 <여자는…>에게 일종의 ‘불운’이었다. 이번 칸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상영과 기자회견이 <여자는…> 전후에 배치되면서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은 비교적 단촐하게 진행됐다.

영화의 제목이 루이 아라공의 싯구인데 그 제목에서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는지

▶몇 년 전 파리의 책방에서 포스트카드에 적힌 구절을 우연히 봤고, 시나리오 쓰면서 떠올랐다. 내 타이틀들은 불교의 화두와 늘 비슷하다. 멍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영화의 어떤 측면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쓰게 됐다. 두 남자 시점에서 보면 과거의 선화를 현재로 불러들이고, 만나러 가고, 헤어지는데, 문호가 혼자 길거리에 서있을 때 선화가 어디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디로 갔을까. 다시 과거로 돌아간 듯 하고. 그래서 과거가 미래로 이어졌다고나 할까.

배우들에게 묻겠다. 처음 스크립트를 받은 이후 역할이 어떻게 변화돼 나갔나

▶(김태우) 시나리오 만큼의 자세한 내용이었다. 매일 아침 나오는 대본에선 대사가 정확하게 나오는 것 정도라고 할 정도로 그 장면에 대해서 미리 충분히 숙지한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 감독님 작품이 롱신 원테이크로 길게 가고, 대본이 매일 나오고, 또 날 것처럼 하길 원하기 때문에 굉장히 집중이 필요했다. 스무번, 서른 번씩 촬영하는 경우가 잦았다. 집중의 경험이 앞으로 작업에 도움 될 것 같다.

▶(유지태) 영화 성격상 디테일한 부분이 바뀌는 것은 감독의 생각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우리는 준비돼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영화다.

▶(성현아) 영화 입문 초기단계에서 배워야할 게 많았는데 많이 뺏어온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얻은 것으로 다른 영화에서 다른 모습 보여줘야할 텐데하는 고민이 앞선다. 굉장히 자연스러워야한다는 것. 모든 연기의 기본이 자연스러움이라는 걸 다시 배웠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롱테이크로 유명하다. 보기에 따라 흥미로울 수 있고 지루할 수도 있다. 작업 과정에서 배우들이 긴 롱테이크를 할 때 감독으로서 맘에 들지 않을 때 어떻게 유지하는지, 배우들은 어떻게 긴 롱테이크를 견뎌내는지

▶(유지태)어떻게 절충하는가하면 좋을 때까지 촬영한다. 연기는 하던대로 하고. 내 인생에서 6분 이상 롱테이크를 하는 건 앞으로 힘들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대목은 영광스럽다.

▶(김태우)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다 알고 있었던 내용 것이라서 오히려 롱테이크로 안가면 놀라운 일이 아닐까. 매번 테이크 갈 때마다 날 것으로 가야하는 게 힘들었다. 중국집 장면 같은 경우, 영화하기전 석달 동안 술마시며 친해지는 시간이 있었는데, 절반은 나를 믿고 반은 지태를 믿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신 힘들었던 건 보통 컷을 나누면 맘에 드는 걸 고를 수 있는데, 롱테이크는 앞부분은 좋고 뒷부분은 나빠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첫번째 것을 쓸지 마지막 것을 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렇지만 재밌었다.

▶(홍상수)롱테이크를 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는 건 아니다. 롱테이크의 미학이 있어서 선택한 게 아니고 첫 영화를 찍을 때 촬영현장 가서 첫 커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의 선택이 됐고. 롱테이크의 시공간 속에 영화의 엘리먼트들을 끼워넣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잘 표현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성현아)감독님 작품을 볼 때마다 배우로서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 많이했다. 와서 보니 카메라 뻗쳐놓고 너네 맘대로 해봐라가 아니어서 놀라웠다. 디테일을 많이 요구하는 게 도움이 됐다. 배우들의 감정 교류를 중시하면서 찍었고 그게 힘이 됐다.

배우들이 말하길 감독의 생각에 굉장히 충실하게 따라갔다고 하는데, 여자가 남자를 앞서나가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의 진행관계가 감독의 관심사였나

▶현실 속에서 남자가 여자를 지배할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여기선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내 개인적 여자, 남자에 대한 지배관계를 말하려는 건 아니었고, 그들의 구체성 속에서 우리가 지닌 상투적이고 위험한 익숙해진 감정들, 세상을 해석하는 내러티브를 다시한번 쳐다보게 하기 위해 그런 인물들을 쓰는 것 같다. 보통 삶의 현상을 해석할 때 삶의 무한한 점들 가운데 몇가지만 뽑아내서 자기 해석을 뒷받침한다. 여기 쓰인 구체적 조각들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들인데 조금씩 고치고 왜곡시킴으로해서 너무나 뻔하게 알고 있다는 걸 다르게 느끼게 함으로서 우리가 쳐다보는 상투적 감정의 반응들을 다시한번 쳐다보게 하기를 원했다.

▶(유지태) 기자의 생각을 꼬집으려는 건 아니고, 감독의 생각만 충실히 따랐다는 건 오류인 것 같다. 모든 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소통을 통해 만드는 것 아닌가.

공동 프로듀서인 마린 카미츠에게 묻겠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어떤 점이 제작자로 참여하게 했는지.

▶나이가 들수록, 영화를 제작하면 할수록 권위적 영화를 싫어하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두시간의 이야기 속에 관객을 가두어서 내던져버리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관객에게 더많은 자유를 주는 영화들이 점점 더 좋고, 그런 영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 그런 태도가 관객과 영화와 삶 그 자체에 대해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그런 자유를 관객에게 주고 스스로 자신에게서도 찾는다. 그건 아주 드문 경우고 그런 점에서 현재 활동하는 감독 중에 가장 훌륭한 감독중의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독창적인 영상과 스타일을 갖고 있으면서도 음악, 회화 등에 가까워지는 영화를 좋아한다.

보통 영화를 촬영할 때는 꼼꼼히 준비해서 하는 게 일반적인데, 아침에 대본을 준다든지 술장면에서 실제로 술을 먹게 하는 건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 건가

▶(홍상수)만드는 사람마다 그것의 최선을 뽑아내는 게 다를 것이다. 준비를 안하는 게 아니고 모든 걸 다 책상 앞에서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현장 속에서 더 많은 걸 느끼고 그걸 미리 준비한 것과 섞는데서 최선을 찾아가는 것 같다.

마린 칼미츠에게 묻고 싶다. 자국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를 제작할 때의 어려움은? 보편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고유의 것이 많이 드러나는데.

▶나는 전 세계 영화들의 제작에 가담한 적 있고, 이번에 한국영화에 공동제작으로 참여해 기쁘다. 모범적 사례였다. 진행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적 관계도 그렇고. 같은 스탭과 다시 이런 경험 갖고 싶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영화를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중시한다. 영화의 중심이라할 파리 같은 곳에서 다른 나라의 영화를 도와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다른 나라의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더라도 자국의 현실에서 출발해 영화를 만들어야 보편성 가질 수 있다. 서양의 시각을 강요한다고 해서 절대로 보편적 감성의 영화가 나올 수 없다. 자기 만의 감성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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