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자막의 한계를 넘은 ‘소리의 예술’, <벨빌의 자매들>
2004-05-18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음향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애니메이션 <벨빌의 자매들>

이른바 “외국영화”라는 것이 “자막의 한계”라는 저주를 벗어날 수 있을까? 마임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소리를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러한 “미키마우스적”, 혹은 “자크 타티적” 정신이 프랑스-벨기에-캐나다 공동제작 애니메이션 <벨빌의 자매들>(Belleville Rendez-vous)과 헝가리 특산 애니메이션 <허키>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눈부시도록 독특한 데뷔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작품은 모두 풍성한 음향적 표현을 통해 대사를 배제한 채 성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니모를 찾아서>나 <루니 툰: 백 인 액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의 가장 독창적이고 탁월한 장편애니메이션은 실벵 쇼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그는 한때 만화작가였다) 영광스러운 복고풍의 애니메이션 <벨빌의 자매들>이 아닌가 한다. 할리우드산 애니메이션 중에서 이 정도로 훌륭한 작품은 최근작들 중에서 <아이언 자이언트>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두 작품 모두 최근의 대세인 3D보다는 “만화스러운” 2차원적 이미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영화는 30년대 프라이셔 형제의 만담 만화를 천재적으로 혼성 모방해 스크레치를 입혀 완성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늘였다 줄였다를 반복하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한바탕 지나가면 곧이어 올스타 버라이어티 쇼가 시작되는데, 장고 라인하르트나 조세핀 베이커, (탭댄스용 신발 한짝에 푹 파묻힌) 프레드 에스터같이 커리커처로 부활한 과거 명사들을 위한 공연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무대 위의 주인공은 감염될 듯한 즉흥 노래로 은근한 흥분과 희미하게 배설의 쾌감마저 제공하는 세 쌍둥이 가수들이다.

화면은 정적으로 분리되고, 드골 시대의 언제쯤인가에 (쇼메 감독은 1963년생이다) 이 쇼를 텔레비전으로 바라보던 늙은 노파 수자와 그녀의 우울해 보이고 날카로운 콧대의 손자 챔피온은 더한 결핍의 상태에 남겨진다. 할머니와 챔피언, 그리고 밉살스럽게 짖어대는 그들의 애완견 부르노는 기차가 지나가는 철교 때문에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어느 고립된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의 세계에서 그 세 쌍둥이 가수들은 스케치된 스토리북 스타일의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로널드 실을 연상시키는 가늘고 긴 라인들과 호리호리한 외양의 이 캐릭터들은 솜으로 꽉 채워진 형상에 그 색조는 억제된 가을의 톤이다.

거의 대사가 없는 <벨빌의 자매들>은 말하자면 “이야기적 장치에 주안하고 있는 이야기적 장치(?)”이자 “동작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움직이는 만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자 할머니의 걸음걸이 하나하나는 거추장스러운 교정용 신발을 통해 강조되고 있고 환상적인 자전거타기 선수인 챔피언은 할머니에 의한 섭생법의 일환으로 자전거타기를 (그가 정체불명의 두 사내에게 납치되어 거대한 수송선으로 끌려가는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배는 바다 위에 무뎌져가는 불꽃처럼 얹혀 있고 도저히 멈춰 세울 수 없는 수자 할머니와 부르노는 그들을 쫓아 패달을 밟으며 태풍과 고래를 피해 흡사 벨빌의 뉴욕(혹은 퀘벡)과 같은 도시에 다다른다.

둔감하기 그지없는 항구의 여신상은 그들이 뚱땡이들의 도시에 들어서고 있음을 예고하는데 (쇼메의 캐릭터들은 악당들이 모듈 모양으로 각 져 있는 것처럼 몇몇 전형적인 시각적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다) 흡사 부르클린 다리와 같은 곳에서 지내던 수자 할머니는 (늙었지만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세쌍둥이 가수들에게 발견되게 되고, 이 노파들은 그녀를 그들의 지저분한 주택으로 데려가 개구리 스프를 대접한다. (아이들은 아마 이 장면 속의 디테일들을 몹시 즐길 것이다.) 그 사이 챔피언은 악당들이 가상의 자전거 도박을 벌이는 지하 세계의 한 나이트클럽에 억류되어 있었는데 경주의 배경은 옛날 영화의 원시적인 스크린 투사 방식으로 장치되어 있다. <벨빌의 자매들>는 탈출한 인물들이 도망치고 차고 받는 추격전 속의 추격전으로 끝을 맺는다.

모든 애니메이션은 불가피하게 편집광적이고, <벨빌의 자매들> 역시 이 점에서는 겨우 신선해 보일 정도이다. 영화는 불쾌하지만 익살스럽고, 그로테스크하지만 즐겁다. 반복을 거듭하며, 결코 귀엽지 않지만 비싸게 굴지도 않는다. 영화의 대단원에서 할머니들은 신문을 두드리고 냉장고와 진공청소기를 이용해 당신이 반드시 체험해두어야만 할 소음의 협주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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