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부실한 드라마를 뒤덮는 현란한 스타일, <블루베리>
2004-05-25
글 : 박혜명
화려한 CG 영상과 카메라워크를 통해 탐구해보는 인간의 악한 본성

월리(마이클 매드슨)라는 남자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눈앞에서 잃은 마이크. 마을에서 도망치다 쓰러진 그를 인디언들이 발견해 자신들이 사는 신산에 데리고 가 돌본다. 몇년이 흘러 장성한 마이크 블루베리(뱅상 카셀)는 마을 보안관이 되고, 신산에 숨겨졌다는 금괴를 빼내려는 무리와 이에 거칠게 대항하는 인디언 사이를 중재하고자 애쓴다. 한편, 오래전에 죽은 줄 알았던 월리가 마을로 돌아오면서 마이크는 다시 한번 운명적인 대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블루베리>는 <도베르만>(1998)을 연출한 얀 쿠넹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그의 데뷔작 <도베르만>은 쉴 틈 없이 날아다니는 카메라워크와 재치있는 화면분할, 과장된 앵글 등 스타일리시한 형식뿐 아니라 화면 위로 발산되는 폭력적인 분노의 에너지로 웬만한 할리우드 액션영화들보다 거칠고 대담한 매력을 뿜었던 영화다. 뮤지컬 형식을 차용하거나 영화 전체를 저속촬영한 그의 단편들을 봐도 얀 쿠넹의 스타일은 영리하고 기발하다. 그런 재치 덕분에 영화 속에 뿌리를 알 수 없는 증오의 감정과 잔인한 폭력이 난무해도 <도베르만>은 즐길 만한 영화가 된다.

주제의식이 무거운 <블루베리>는 이러한 얀 쿠넹 감독의 개성에서 많이 벗어난 영화다. 스타일을 과시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통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분위기 심각한 드라마의 부실한 구멍을 메워주지는 못한다는 게 <블루베리>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메워주기는 커녕 스타일이 내용과 인물을 완전히 압도해버린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를 이야기하려는 이 영화는 오로지 화려한 비주얼로 모든 것을 말하려고 한다. 인디언 부족이 신비스러운 주술로 그 힘을 불러들일 때마다 저것이 뭘까 궁금하지만 대답은 어디에도 없다. 과다하게 남용되는 CG 영상과 불필요하게 멋을 내는 카메라워크 때문에 현기증을 느끼면서 저 존재가 거대하고도 두려운 것이구나, 하는 사실만 ‘느낄’ 뿐이다. 따라서 알고보면 단순한 줄거리인데도 상황은 이해되지 않고 마이크와 월리 사이의 대결구도에서 극적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빠져도 상관없을 마이크와 마리아(줄리엣 루이스) 사이의 로맨스는 표현이 지극히 상투적이라 실소가 나온다.

자신을 “만화세대”라고 말하는 얀 쿠넹 감독은 <뫼비우스>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역시 만화가 원작인 전작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된 <블루베리>는, 어쩌면 얀 쿠넹이 <도베르만>에 담아냈던 “악의 형체”의 기원을 현란한 비주얼을 통해 탐구해보려는 영화 같기도 하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