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코언형제의 강도코미디, <레이디 킬러>
2004-06-02
글 : 김혜리
코언 형제의 강도코미디. 금고털이는 쉽고 할머니 이기기는 어렵다.

조엘과 에단. 코언가의 머리 좋은 두 아들은, 거의 시계추 같은 공평함으로 누아르와 코미디의 함량을 번갈아 우위에 두며 영화를 만들어왔다. <허드서커 대리인> <위대한 레보스키> <참을 수 없는 사랑>처럼 코미디가 앞자리에 놓인 작품의 경우, 스티브 부세미, 존 터투로, 프랜시스 맥도먼드 같은 단골 배우 외에 주류 영화계 스타들이 가세한다는 점도 규칙 아닌 규칙처럼 보인다. 톰 행크스 주연의 신작 <레이디 킬러>는 물론 후자에 속하는 영화다. 덧붙여 비고(備考)란을 만든다면, 1955년 영국 일링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동명영화의 리메이크이고, 감독 크레딧을 늘 조엘에게 넘겼던 에단이 나란히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을 적어둘 만하다.

배우 캐스팅에 준하는 세심함으로 영화의 지역적 배경을 고르는 코언의 이번 선택은 미시시피. 죽은 남편의 초상화와 고양이를 벗 삼아 혼자 사는 존경할 만한 미망인 먼슨 부인(이르마 P. 홀)에게 하숙을 희망하는 남자가 찾아온다. 젠체하는 말투와 콧수염의 사내 G. H. 도르(톰 행크스)는 안식년을 맞은 교수를 자처하며 친구들과 결성한 5중주단의 연습실로 지하실을 쓰겠다고 청한다. 그러나 문제의 5인조는 누가 봐도 친분을 상상하기 힘든 괴짜 스테레오타입들의 집합이다. 카지노에서 일하는 입 험한 흑인 청년 가웨인, 힘 좋고 머리 나쁜 풋볼 선수 럼프, 인도차이나 군인 출신 골초 제너럴, 과민성 대장증상에 시달리는 폭파 기술자 팬케이크. 이들의 진짜 목적은 먼슨 부인 지하실에서 인근 카지노 금고까지 땅굴을 파서 크게 한탕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목청 크고 준법정신 투철한 막무가내 먼슨 부인에게 돈다발을 들킨 교수 일행은, 누가 안주인을 영원히 입막음하느냐를 놓고 내키지 않는 제비뽑기에 돌입한다. 하지만 다섯 장정의 ‘할머니 죽이기’는 녹록지 않다. “홍차나 한잔 드실라우?”라며 중요한 때마다 끼어들어 악당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던 1955년작의 조그맣고 상냥한 영국 할머니와 달리, 덩치 당당한 미국 할머니는 버릇없는 젋은 것들의 따귀를 때리고 호통친다. 결과적으로 두 영화의 어설픈 범죄자들은 똑같이 설거지를 거들며 쩔쩔매지만, 영국판 <레이디 킬러>가 자아내는 역설의 웃음이 더 큰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나저나 결국 영화는 레이디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알고 보면 최고로 겁나는 ‘킬러’인 레이디의 이야기이기도 하니 제목 한번 효율적이다.

<뉴욕 타임스> 평론가 A. O. 스콧이 적절히 표현한 대로, ‘원작없는 리메이크’를 평생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르의 연구자 코언 형제는, 막상 오리지널이 존재하는 진짜 리메이크 <레이디 킬러>에 이르러서는 놀랄 만큼 순순히 원본을 따른다. 물론 신판 <레이디 킬러>의 구성 요소는 대부분 개비됐다. 시체 은닉처로 쓰였던 기찻길은 강물로, 하숙집 앵무새는 고양이로 바뀌었고, 예전에는 없던 에드거 앨런 포의 인용과 그가 노래한 까마귀의 이미지도 보태졌다. 그럼에도 <레이디 킬러>를 느슨한 리메이크라고 칭하기 힘든 것은 유머와 스릴의 뇌관을 이루는 난감한 상황의 설계가 똑같기 때문이다. 코언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들은 희미하나마 어김없이 제자리에 있다. <레이디 킬러>에서도 잘려나간 신체 부위는 멋대로 굴러다니고, 코언의 주인공들은 또 한번 골칫거리 시체를 처리할 방도를 고심한다. 내러티브를 끊어먹기 일쑤였던 예의 뮤지컬 판타지 시퀀스는 성가대의 열창으로 대체됐고, 전작들에서 애용한 보이스 오버는 사라진 대신 사건 전개에 따라 표정으로 코멘트하는 초상화가 등장했다. 얄궂게도 <레이디 킬러>의 실행 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오산은, 대스타일뿐 아니라 여러 장르에 유능한 배우 톰 행크스의 캐스팅이 효과를 보지 못한 점이다. 역할과 앙상블 속으로 용해되어 잘 보이지 않았던 1955년작의 주연 알렉 기네스와 반대로 도르 교수 역의 톰 행크스는 필요 이상 시선을 끈다. 허영과 현학으로 잔뜩 장식된 도르 교수의 로코코풍 대사는 그 자체로 감상할 만하지만, 기계적 암송에 가까운 행크스의 대사 처리와 천식 환자 같은 작위적 웃음소리는 거듭될수록 매력을 잃는다.

“재능을 무가치한 목표에 쏟아넣는 스필버그와 루카스 등 2세대에 이어 2세대보다 재능도 달리면서 그저 인용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더 열등한 세대”라고 코언 형제와 동세대 감독들을 통탄해 마지않았던 고집쟁이 평론가 폴린 케일이 <레이디 킬러>를 본다면 의기양양해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레이디 킬러>의 오락성은 코언의 어느 전작보다 폭넓은 관객층에 호소할 만한 것이다. <레이디 킬러>는 범죄세계를 건드린 코언 영화로서는 드물게 잔혹한 장면이 없고 플롯의 전개가 곧바르다. 관객을 웃기는 빈도도 뒤로 갈수록 잦아지며 범죄의 공모자들이 엎치고 덮치며 서로를 등치는 후반부는 심지어 1955년작보다 더 재치있고 역동적이다. 본디 <맨 인 블랙>의 배리 소넨펠드 감독- 코언 형제의 촬영감독 출신- 을 위해 쓴 시나리오였다는 이야기에 절로 수긍이 간다. 다만 여기서 희박해진 것이 있다면 어떤 인물과 스토리를 다루건 코언 형제의 영화를 궁극적으로 ‘차가운 영화’로 느끼게 만들었던, 스토리와 화자 사이의, 장르와 연출자 사이의 숙명적 거리감이다.

:: 오리지널 <레이디 킬러>

코미디로 읽은 영국 전후사회

영국 영화사의 한 시대를 풍미한 제작자 마이클 발콘의 일링스튜디오에서 1955년 제작된 알렉산더 매켄드릭 감독의 <레이디 킬러>는 문외한이 얼핏 보기에는 영국에서 만든 히치콕 영화와 비슷한 정취의 범죄코미디다. 신고정신 투철해 경찰과 친하고 우산을 잘 잊어버리는 전형적인 영국 노부인 미세스 윌버포스에게 마커스 교수라는 남자가 찾아와 하숙방을 얻는다. 아마추어 현악 5중주단을 가장한 이들은 보케리니의 <미뉴엣>을 틀어놓고 연주하는 척하면서, 현금을 탈취하고 나아가 할머니에게 훔친 돈을 집까지 갖고 오게 할 계략을 짠다. 범죄 5중주단에는 뭐든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자도 있고 모성에 굶주린 거한도 있지만, 누구도 홍차를 강권하고 애완 앵무새를 잡아달라는 할머니의 청을 거절할 만큼 간이 크지는 않다. 알렉 기네스가 마커스 교수 역을, 후일 <핑크 팬더> 시리즈에서 다시 만난 피터 셀러스와 허버트 롬이 일당 멤버 역을 맡았고 케이티 존슨이 윌버포스 부인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기우뚱한 벽으로 둘러싸인 실내와 한정된 거리와 철로를 배경으로 하는 <레이디 킬러>는 많은 일링 코미디의 걸작이 그랬듯이 당시 전후 영국사회에 대한 메타포로 읽혔다. 할머니에게 꼼짝 못하는 5인조의 궁지를 묘사한 영국식 매너 코미디가 압권. 할머니에게 범행이 들통난 뒤 “어차피 아무도 개의하지 않고 보험회사가 수습할 테니 희생자는 없다. 오히려 할머니가 끼어들어 제보하는 것을 귀찮아 할 것”이라는 알렉 기네스의 설득은 코언 형제의 <레이디 킬러>에서 톰 행크스가 “100만명이 1페니씩 기부하는 셈”이라는 논리와 상통한다. 거의 완벽한 구성에 미소를 지을 때쯤이면 사회를 바라보는 누아르의 냉소적인 관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비디오, DVD가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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