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다큐멘터리 <감옥탈출> 감독 조석영
2004-06-03
글 : 오정연
사진 : 오계옥

1996년 사기절도죄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말 가출소한 조석영(44)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절대로 버려지지 않는 편견이다. 그의 실제 형량 2년을 6년 넘게 불어나도록 만든 사회보호법은, 범죄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제도로 굳어져버린 대표적인 예. 그것은 복역수가 주어진 형기를 다 마쳐도, ‘상습성과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검찰의 자의적인 판단만으로 최고 7년까지 보호감호소라는 또 다른 감옥에 사람을 가둘 수 있는 악질적인 제도다. 이 제도의 폐지를 위해 끈질기게 투쟁했던 그가 제8회 인권영화제의 사전제작지원작으로, 자신의 문제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감옥탈출>을 만들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격리됐던 탓에 휴대폰 사용법을 익히는 것도 어려웠던 조석영씨가 사회보호법에 대한 문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라는 제의를 받은 것이 지난 3월 초. 꼬박 15일 동안 고민한 끝에, 그는 제의를 받아들였다. 카메라 작동법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법까지 알아야 할 것은 너무 많았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보름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한달 동안 25시간 분량을 찍고 16명을 인터뷰했다. 거의 두달 동안 제대로 잔 적이 하루도 없었다. 한밤중에 지방 촬영을 가면서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손으로는 촬영을 하면서도 위험한 줄 몰랐는데”, 찍어놓은 소스를 편집하려니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요하지 못한 인터뷰는 다시 보면 언제나 아쉬웠고,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했던 출소자들은 막판에 자신의 분량을 빼달라고 요구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도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자신의 논리를 영상으로 전달하는 것은,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5월23일. <감옥탈출>의 상영을 앞둔 감독 조석영씨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자,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린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관객은 솔직담백한 20분짜리 다큐멘터리에 기꺼이 호응하고 있었다.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출소자들의 집단수용시설과,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하지만 좌절하게 되는 한 출소자의 이야기가 병렬식으로 배치된 <감옥탈출>은 자기정당화와 연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유머와 풍자를 지닌 건강한 작품이었다. “처음 해보는 촬영이어서 부족한 점이 많았을 텐데, 그림이 좋은 인터뷰와 잘된 인터뷰 중에서 어떤 것을 택했냐”는 질문에, “화면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좋은 인터뷰를 택했다”고 답했던 그는, 진심이 담긴 영상물이 지닌 힘을 알고 있었다.

본인의 표현을 따르자면, 출소 이후 맘잡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이라고 믿는 가족들에게 ‘사기’를 쳐가면서까지 작업에 매진했던 조석영씨. 이후 계획을 묻자, 만면에 화색이 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마음속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출소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사업, 실제 감옥과 똑같은 세트를 지어서 일반인들이 직접 감옥 안 인권상황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테마파크(?) 사업 등…. 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앞으로 영상물 제작을 공부해서 부족했던 작업을 보완하는 일이다. 벌써 영상미디어센터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미 몇번의 인터뷰를 경험한 그는, 감옥에 가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거리낌없이 대답하곤 한다. 지나온 삶에 주눅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정말로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가족들의 기대는 벌써 이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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