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 타이밍을 맞춘 또 하나의 안티 부시 영화가 선을 보였다. 독일 출신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투모로우>. 고향에서 별볼일 없다가 할리우드에서 살길을 찾은 독일 감독 가운데 한명으로,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등을 통해 ‘단순한 플롯+가공할 특수효과’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아온 에머리히가 픽션계의 마이클 무어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투모로우>의 스토리는 단 몇줄로 요약된다. 교토 환경조약을 가뿐히 거부한 미국은 지구 온실효과로 인한 대참사라는 죗값을 톡톡히 치른다. 미국 전역을 강타한 갑작스런 빙하기 말이다. 이로 인해 기후 전문가 아버지는 아들과 생이별을 하고, 아들은 얼어붙은 미국 땅에서 눈물겨운 고생을 하다가 아버지에 의해 구출된다. 생존한 미국인들은 멕시코로 피난을 가고… . “신임” 대통령은 자연을 함부로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깨닫는다. 이 몇줄의 스토리가 컴퓨터 특수효과 덕에 지루하지 않게 반복되고 늘어진다.
에머리히는 이 작품을 통해 정치선언을 했다. 엄청난 재난을 몰고올 수 있는 사안들에 무신경한 부시 정부의 무책임을 이슈화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감독의 노골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누구보다도 환영하는 인물은 앨 고어. 그는 영화가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중대사안을 다루고 있다고 쌍수로 환영하고 있다. 반면 백악관은 나사(NASA)를 비롯한 정부기관들에 영화에 대한 논평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공무원은 영화에 대해 공식논평을 하지 않는다는 변을 내세우면서. 하지만 에머리히나 볼프강 페터슨 같은 할리우드의 독일 감독들이 너무도 독일적인 시각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간섭하려 든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일반적이다.
영화의 힘은 막강하고, 플롯이 단순할수록 메시지는 관객 가슴에 더 깊게 꽂히게 마련 아니던가. 1979년 핵발전소 참사를 다룬 <차이나 신드롬> 이후 미국 정부는 핵발전소 건설허가를 중지했다. <투모로우> 역시 학술적 신빙성을 떠나 그 직설적인 메시지로 환경문제에 무관심한 관객까지 그 심각성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더불어 환경문제에 방만한 부시 정권의 오만함까지 말이다. 단, 이 작품이 <홀로코스트>나 <뿌리>처럼 광범위한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기에 역부족이라는 우려는 대참사의 책임을 전적으로 미국에 넘기는 흑백논리 때문이다. 바로 이 명확한 책임 전가로 인해 미국 아닌 다른 나라 관객은 남의 집 불구경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