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릴레이] <여.친.소>,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06-08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를 비평적으로 소개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기는 좀 힘들다. 그러나 아시아를 잇는 한국의 대중문화, 아시아 상호간의 대중문화교류를 이해하는 텍스트로서는 중요하다.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엽기적인 그녀>가 홍콩, 대만, 일본, 타이의 젊은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를 감정적으로 친밀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보면 중국에서 <엽기적인 그녀>는 <나의 야만적인 여자 친구>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불법 DVD 판매이긴 하지만 300만장에서 1000만장까지 DVD가 유통되면서 중국권의 젊은 관객들에게 엽기발랄한 이미지의 전지현이 알려지게 된다. 대만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본 젊은 여성들은 엽기적인 여자 친구가 되고 싶어 했고, 홍콩의 젊은 남자 관객들의 호응도 열렬했다.

아시아에서 할리우드의 문화지배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동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열풍과 맞물린다. 이어 1990년대 말,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가요가 한류라는 명칭으로 유통되기 시작하고,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주목을 끌면서, 한국 영화는 일본 등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123분 상영시간 고역. 그러나 관심을 보낼 필요는 있다

<여친소>는 이렇게 <엽기적인 그녀>의 연장선에서 아시아의 젊은 관객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홍콩의 제작자가 제작비를 부담하고, 홍콩, 중국, 한국에서 동시 개봉을 하는 등 <여친소>는 한국 영화가 범아시아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사례 연구를 제공할 수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핵심인 성 역할의 전도는 <여친소>에서도 두드러진 요소다. 능동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여자와 심약하고 착한 남자가 벌이는 (헛)소동이 멜로드라마와 액션 장르의 관행들을 적극적으로 취하면서, 개연성이 없는 사건들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여자 경찰인 경진(전지현)은 곧 고등학교 선생님이 될 명우(장혁)를 소매치기로 오인해 경찰서로 끌고 온다. 이후 명우는 경진의 구타와 구박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범인 검거 현장에 경진을 돕는답시고 서성거리다가 가슴에 총을 맞고 죽게 되는데, 이후 영화는 <고스트>의 관행을 따라 죽은 남자 친구가 살아있는 여자 친구의 지킴이가 되는 고스트 러브 스토리로 변한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자신의 장르를 소개함에도 불구하고, <여친소>에서 흥미로운 점은 젊은 남녀의 로맨스가 결코 어떠한 성적 접촉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데 있다. 명우가 키스를 하려하자 경진은 심지어 불쏘시개로 그의 입술에 화상을 내기도 한다. 엽기 속의 이해 불가능한 ‘순수‘가 감독 곽재용의 로맨틱 코미디의 핵심인 셈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는 성인이지만, 관계 속에서는 미성숙한 남녀의 이야기가 스타 만들기와 홍보 등을 통해 아시아 영화로 자신을 재포장해 내는 과정을 증후적으로 읽어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반면 억지춘향의 순수와 엽기를 123분의 상영시간 동안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그러나 <겨울연가>의 배용준과 <여친소>의 전지현이 제조해내는 순정과 엽기 문화가 왜 아시아의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는가에 진정한 관심을 보낼 필요는 있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중문화 지배 속에 있던 아시아에서 생성되고 있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기류를 읽을 수 있는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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