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악당이 늘어난 좌충우돌 풍자극, <슈렉2>
2004-06-15
글 : 정승훈 (영화평론가)
‘미트 페어런츠’ 하러 갔다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된 사위 슈렉, 세상의 편견에 맞서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3년 전, 늪지의 괴물 슈렉은 마법에 걸린 피오나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미녀와 야수>를 닮은 키스신은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었다. 슈렉은 여전히 괴물로 남았고, 피오나는 인간이 아닌 괴물로 변해버렸다. 자기 본성에 맞게 살아가는 괴물과 그에게 매료돼 자기 자신을 버린 연인. 그뒤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마침표를, 그들은 그렇게 찍은 듯했다. <슈렉2>는 ‘과연 그랬을까?’라는 의혹으로부터 심술궂은 후일담을 풀어낸다. 신분이 다르고, 인종(!)이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할 순 있지만, 그들의 결합을 세상이 축복하겠느냐고 딴죽을 걸어보는 것이다.

<슈렉2>는 슈렉이 피오나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은 ‘겁나먼’ 왕국의 초대를 받지만, 피오나의 부모와 왕국 사람들은 슈렉 부부의 모습에 경악한다. 환대받지 못한 슈렉은 피오나와 다투기도 하고, 피오나의 아버지가 보낸 자객 ‘장화 신은 고양이’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모든 동화에 해피엔딩을 보장한다는 요정 대모를 찾아간 슈렉은 배우자에게까지 약효가 전해진다는 ‘영원히 행복해지는 약’을 마시고,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된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면, 모든 게 변한다. 슈렉과 피오나도 마찬가지. 늪지대에서 나름대로 고고하게 가끔은 위악을 떨며 살아가던 아웃사이더 슈렉은 자신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전편에서 대담하고 엽기적인 행각(?)을 보였던 피오나도 홈그라운드에서는 양순하고 우유부단한 소녀처럼 행동한다. 적어도 중반부까지 슈렉 부부는 ‘그들답지 않게’ 주류사회에 편입하려는 열망에 안달하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이것은 최후의 선택에 다다르기까지 수반되는 과정상의 혼돈일 수도 있다. 반전을 지켜볼 것!).

슈렉 부부가 부진한 대신 <슈렉2>에는 새로운 캐릭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동화 캐릭터 압살 정책’을 폈던 1편의 파콰드에 비하면 어설프고 귀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악당이 늘었다. 피오나의 배필이 됐어야 한다며 원통해하는 프린스 차밍, 그 아들을 통해 왕국을 손에 넣으려는 요정 대모, 그들의 손에 놀아나는 심약한 왕이 슈렉과 피오나의 사랑을 위협하는 훼방꾼들. 적군에서 아군으로 변절하는 캐릭터도 있다. 왕이 고용한 괴물 전문 킬러 ‘장화 신은 고양이’는 자신이 슈렉의 적수가 안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는, 자신의 필살기인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슈렉의 여정에 동참한다. 그리고는 “수다쟁이 동물 캐릭터는 나 하나로 족하다”며 저항하는 동키와 짝패를 이룬다.

피노키오를 푼돈에 팔아치우는 제페트 할아버지, 피오나의 부케를 차지하려고 치고받는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동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꼬고 비틀고 뒤집었던 전편에서처럼 <슈렉2>의 풍자와 패러디도 풍성하다. 신데렐라의 ‘변신’을 도왔던 할머니 요정을 모델로 한 ‘요정 대모’는 여기서 슈렉 부부의 사랑과 왕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교활한 악당으로 돌변했고, 인어공주는 감히 슈렉의 입술을 훔친 죄로 피오나에게 혼쭐이 난다. 하지만 <슈렉2>가 휘두르는 풍자의 날은 동화와 디즈니 월드를 향해 있진 않다. 자유인 슈렉의 대칭점을 “이미지에 연연하는 사람들”로 정한 제작진은 그런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을 할리우드와 베벌리힐스로 보았다.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는 라푼젤과 신데렐라, 로데오 거리처럼 ‘베르사체리’ 등의 명품 매장이 모여 있는 ‘겁나먼’ 왕국의 번화가. 그 거리에서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리얼리티 TV쇼 <캅스>의 변형인 <기사들>의 카메라에 슈렉 일당이 ‘범죄 용의자’로 포착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화에 대한 패러디는 더 늘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해변 키스신, <반지의 제왕>의 골룸과 반지신, <에이리언>의 에일리언 탄생신, <스파이더 맨>의 거꾸로 키스신, <미션 임파서블>의 공중 잠입신, <킹콩>의 거리 활보신처럼 ‘아이콘’이 될 정도로 유명해진 장면들이 수시로 출몰하는데,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개그를 단박에 포착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패러디는 아동용은 아니지만, 모르고 지나친다 해도 대세에 지장없는 디테일한 장면에만 등장한다. 뮤지컬의 비중이 늘었다는 것도 작지 않은 변화.

속편의 법칙에 따라, 무대가 달라지고, 인물도 사건도 많아진 <슈렉2>는 전편이 쌓아올린 기대치를 넘어서진 못했다. 인간 캐릭터가 늘어나면서, CG 캐릭터 특유의 차갑고 딱딱한 질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나, 그 통렬했던 조롱과 패러디의 수위가 하향 조정된 점이나, 단편적인 개그에 집착하는 듯한 인상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전편과 별개로 <슈렉2>는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최후의 반전에 이르기까지 좌충우돌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슈렉2>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영악한 다중성을 닮은, 빼어난 오락영화다.

:: 유머는 즐겁게 교훈을 얻는 수단이다

앤드루 애덤슨 감독 인터뷰

칸영화제에 연속 진출했다. 칸에서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보나.

기존의 애니메이션과 다르기 때문일 거다. 나는 실사영화를 했었기 때문에 실사영화의 감각을 갖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스스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성인 관객에게 어필했던 것 같다.

1편에 이어 2편도 연출하면서, 주력한 부분이 있었다면.

카첸버그가 2편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무려 5년을 <슈렉>에 매달렸기 때문에 그 이상 더 새롭게 보여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카첸버그가 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그걸 들으면서 내가 캐릭터들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 캐릭터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결혼은 두 가족의 결합이기도 하고, 당사자들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가 가능할 거라고 봤다. 처음에는 피오나 부모가 늪지대로 오는 것으로 설정했다가, 슈렉이 도시의 성으로 가는 쪽이 더 재밌을 것 같아 그렇게 바꿨다.

실사영화의 기법이나 디지털 기법 등 눈여겨봐줬으면 하는 장면이 있다면.

1편에서는 관객이 실사기법에 익숙하기 때문에 ‘진짜’처럼 느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실사영화의 카메라 기법을 썼다. 이번 경우는 전편과 너무 달라서도 같아서도 안 되기 때문에 많이 조심스러웠다. 가장 큰 도전은 캐릭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주요 인물도 많아지고, 군중신도 많아졌다.

할리우드 전반에 대한 풍자가 두드러진다.

피오나의 출신 배경에서 연상된 것이다. 피오나의 부모는 이미지에 연연하는 사람들일 것이고, 그들이 살 만한 곳으로 떠올린 장소가 바로 베벌리힐스였다. 어떤 식으로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고. 일단 베벌리힐스와 할리우드를 조롱하자고 정하고 난 뒤에 사람들이 알아차릴 만한 디테일을 채워넣은 것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풍자 의도도 있었나.

내겐 우리 사회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피오나는 부모의 기대 속에서 살아오다가 결국 자신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동화들을 봐도, 왕자나 기사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달라진다는 얘기를 되풀이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올바로 서는 일이라는 얘길 하고 싶었다. 문화와 인종의 벽을 넘어서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건 정치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다.

도덕성과 유머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했나.

둘 다 똑같이 중요하다. 이야기를 전달할 때 유머를 쓰면, 설교당했다는 느낌없이 교훈을 얻게 되니까.

LA=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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