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놀이공원 귀신의 집 같은 즉각적인 공포, <령>
2004-06-15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숨은 귀신을 찾아라! 즉각적인 공포로 승부하는 영화

서서히 다가오는 심리적 공포, 아름답고 슬픈 호러, 그런 걸 기대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령>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즉각적인 공포로 승부하는 영화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 같은 충격을 원한다면 만족할 만하다. 기본 설정은 <가위>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 등 2000년에 유행했던 한국 공포영화들을 연상시킨다. 5명의 친구가 있고 그중 한명이 왕따를 당하다 죽는다. 원혼이 살아 있는 4명 앞에 차례로 나타난다. <령>이 여기에 덧붙인 것은 주인공 지원(김하늘)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친구를 따돌리고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정말 나였을까? 언뜻 떠오르는 기억과 악몽이 정체모를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영화의 전모를 암시하는 힌트는 크게 두 가지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린 소녀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이 노래는 영화의 오프닝에 흘러나온다. <나이트메어>의 첫 장면을 참고한 이 대목은 숨바꼭질이 <령>의 보이지 않는 맥락임을 알려준다. 영화는 관객을 술래로 만든다. 어딘가 숨어 있는 귀신을 찾아내는 것, <령>이 제안하는 공포의 유희는 그것이다. 또 다른 단서는 죽은 친구가 던진 한마디다. 지원을 선망하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난 니가 되고 싶어.” 이정도면 어떤 반전이 나올지 대충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막판 반전은 예상보다 한 단계 더 나간다.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 이후 공포영화들이 그렇듯 <령>도 반전을 뒤엎는 반전을 시도한다.

<령>이 데뷔작인 김태경 감독은 “<령>이 주는 공포의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가족, 친구, 연인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정서가 묻어 있다”고 말했는데 의도가 충실히 살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구체적인 어떤 인간을 상정하고 드라마를 구성했다기보다 충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물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죽은 친구와 지원의 관계를 해명하는 대목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라잡는 것으로 숨이 벅차다. 인물들이 느끼는 애증까지 그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퍼즐 맞추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힘들다. 퍼즐 자체가 잘 안 맞기 때문이다. 정말 겁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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