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TV를 켜면 어김없이 뽀얀 얼굴 한 가득 천상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다. 내로라 하는 CF퀸은 아닐지 몰라도, 굵직굵직한 광고들 속에서 이나영은 마치 우리와는 다른 종족인 양 눈부시기만 하다. 그런 그가 영화에만 나오면 남자들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2년 전에는 사이버 캐릭터 ‘멜로’에게 마음을 뺏겼고(<후아유>), 지난해에는 영어학원에서 귀여운 바람둥이 문수에게 꽂히더니(<영어완전정복>), 이번에는 무뚝뚝하기만한 왕년의 인기투수 치성을 10년 동안 스토킹한다(<아는 여자>).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처럼 완벽한 이나영이 그토록 평범한(!) 그들에게 매달려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영화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 중 하나다.
예사롭지 않음, 혹은 엉뚱함
“그러게요.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구요. 근데 쫓아다니는 게 맘이 편하지 않나?”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나영이 말하길, 자신이 사랑받는 여주인공을 맡지 않는 이유는 창피하기 때문이란다. “누가 나를 좋아해준다고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요. 그리고 그러면 예쁘게 나와야 하는데, 예쁜 연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그에겐 창피한 일이 정말로 많다. 리허설 때 100%를 다 보여주면 실제 테이크에서 그대로 반복해야 한다는 게 창피하고, 남들 다 하는 영화감상, 어학공부가 취미인 것도 쑥스럽다. 하다못해 사진촬영을 할 때 듣는 예쁘다는 칭찬에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옛날부터 칭찬을 잘 못 믿었어요. 사진찍어주시는 분들이 웃으라고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일 텐데, 예쁘다는 말을 듣고 웃는 것도 창피한 일 같고.”
이나영이 별걸 다 창피해하는 여자라면, <아는 여자> 이연은 어색하고 긴장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비굴해지는” 여자다. 그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해 두리번거리며 딴청을 피우고, 사랑하는 치성을 뒤로하고 돌아설 때는 뭔가를 두고 가는 사람마냥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이 여자가 정말로 그렇게 비굴한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이연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중요한 상황에서 엉뚱한 말을 내뱉고 후회할 때는 있어도, 체질적으로 단 한순간도 거짓을 말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연기를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나 자신이 발전한다는 거예요.” 자기 연기가 발전한다는 말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에게서 본인의 단점을 보고 고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이번에는 영화 속 이연의 구부정한 자세를 보고, 평소 자신의 나쁜 자세를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자세교정을 위해 발레를 배워볼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예전에 <영어완전정복>을 계기로 영어공부에 대한 결의를 다졌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서 본인의 나쁜 습관을 알게 된다는 그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연은 애초부터 이나영을 향해 정조준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후아유>의 인주, <영어완전정복>의 영주도 그랬다. <아는 여자>를 본 주위 사람들은 “야, 이연이가 딱 너구나!”라고 말하지만, 그건 이전 영화를 끝내고도 매번 듣던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자폐소녀 인주, 엽기공주병 환자 영주, 미워할 수 없는 스토커 이연, 이 세 인물들은 ‘예사롭지 않음, 혹은 엉뚱함’을 배제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영화를 한번 찍으면 한동안은 자신이 연기한 인물 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나영이기에 요즘에는 이연의 엉뚱함을 달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치성이 “두달만 살 수 있다고 하면 뭘 할래요?”라고 물을 때, 이연은 “두달을 꼭 채우고 죽어야 되나”라며 허를 찔렀다. 사진찍을 때 배우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묻는 기자에게 이나영은 “배우들이나 유명인들을 만나는 게 일인 기자들은 매번 어떤 생각을 할지가 예전부터 궁금했다”고 반문한다. 문득 어디까지가 영화 속 이연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의 이나영인지를 묻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사진을 찍다가 “어! 느낌이 없어져버렸어요”라며 울상을 짓거나, 마지막 세컷만 더 찍겠다는 말에 “그러면 더 못 하는데…”라면서 말끝을 흐린다. 좋은 포즈, 자신이 가장 예뻐 보이는 표정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매번 애쓸 뿐”이다. 세상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정확하게 ‘이나영은 이런 사람’이라는 정의 역시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찾아서
영화를 준비할 때는, 막상 읽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언제나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이나영의 조급증은 유명했다. <아는 여자> 준비기간 동안, 인물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는 장진 감독 때문에 “어떡해 어떡해”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아는 여자>를 마치고 얻은 깨달음은 이렇다. “치성을 연기한 정재영 선배처럼 배우가 영화 한편을 하나의 톤으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자기만의 페이스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멀리서도 그 인물임을 알 수 있는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풀숏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를테면 이연의 풀숏은 ‘비굴함’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배우가 자신의 몸 전체를 통해 확실하게 그 인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멋진 일이잖아요.” 그는 정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그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래야 한다’라는 원칙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자신이 변화하는 유연함이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은근한 페이스로 승부하는 것이나, 자기만의 느낌으로 풀숏을 채우는 것. 이나영에게는 이제야 알게 된 배우의 중요한 덕목들이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실천해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