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은 나이가 결코 믿기지 않는 연기자 황신혜가 피트니스 비디오를 제작해 또 한번 사람들을, 아니 여자들을 기죽이고 있다. 1983년 MBC 공채 16기로 데뷔한 그는 '컴퓨터 미인'이란 별명을 들을 만큼 화려한 미모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1998년 연하의 남자 박민서씨와 결혼, 딸 지영이를 두기까지 그의 말 그대로 "돌이켜보면 참 힘든 인생"을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살았으며", 또한 "30대 중반을 넘어서 오히려 편해진 삶을 찾았다"고 말한다.
10여년 전부터 시작한 헬스. 그는 최근 철저한 체형 관리 프로그램과 자신의 운동 경험을 25일께 출시될 피트니스&다이어트 비디오와 책자 'Style By Cine'에 담았다. 그가 5년째 다니고 있는 서울 압구정동의 N피트니스센터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도대체 뺄 살이 어디 있다고"라 투덜거렸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왜 자신만이 아는 살이 있잖아요. 어깻죽지, 허리,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 등등. 남들은 몰라도…"라고 했다. 파고 들었다. "매일 운동했다면서요?"라며 짐짓 시비조로.
"운동은 꾸준히 해왔는데 1-2년 전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많았어요. 저녁에 사람들 만나다 보니 술을 자주 마시게 됐죠. '술살'이 장난 아니었어요." 그는 몸매 회복을 위해 술까지 끊었다. 술자리는 되도록 사양했지만 간혹 그런 자리에 가도 미리 양해를 구했다.
황신혜는 "살이 쪄보니 그 불편함을 알겠더라구요. 몸이 힘들어요. 그래서 드라마 <천생연분> 끝나고 비디오 제작 기회가 오자 작심하고 다시 치열한 몸 만들기에 들어갔죠"라고 말을 이었다. 살이 빠지니 그 전에는 아무 말 않던 후배들이 "잘했어. 이제와 말인데 언니 꽤 쪘더라"라고 말해줘 허탈했다나.
"몸과 마음이 안정된 요즈음이 가장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황신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고 거침없이 말할 정도로 운동에 빠져 있다. 그의 스케줄은 뻔하다. 아침에 남편과 밥 먹고(데뷔 전부터 아침은 꼭 챙겨먹는 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 지영이 유치원 보낸 후 헬스클럽행. 여기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운동한다. 점심 때 지인들 만난 후 지영이 올 때쯤 집으로 가 다시 주부로 돌아간다.
헬스클럽에서 그가 하는 스트레칭 몇 가지를 함께 해보며 헉헉 댄 기자와 황신혜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또 놀라운 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가 샐러드를 먹는 것. 그는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식성에 웬만한 남자만큼 많이 먹는다.
"웰빙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웰빙 식단이라 할 수 있네요"라고 웃는 그는 "야채를 잘 안 먹었는데 몸에 좋다고 하니 먹게 돼요. 열심히 운동해놓고 몸에 좋지 않은 것을 한다는 게 영 찜찜해서." 화려한 외모로 주목받다 90년대 중반 이후, 더 세밀히 말하면 드라마 <애인> 이후 그는 연기 잘하는 배우로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황신혜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색깔이 묻어나오는 캐릭터가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
"드라마 소재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져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긴 것 같다"고 겸손해한다. 이어 그는 "사실 무서움이 사라졌어요. 예전엔 겁이 많았죠. 이렇게 소리 질러도 되나, 포옹신은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까 등등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게 많았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럼 이젠? "지금은 정말 편해졌어요. 세월이 주는 편안함이란 것 있잖아요. 이일 저 일 겪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열심히 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 때문에 겁이 없어졌죠." 이렇게 되기까지 주변 사람들이 지켜본 황신혜는 프로 근성이 철저하다. 밤샘 촬영 후에도 잠 대신 운동을 택하고, 연기할 때 자신의 의상이나 헤어 컨셉트를 일일이 자신이 연구하고 결정한다.
일은 프로지만, 그의 다른 생활은 순박한 편. 물론 직업상 고가의 옷을 입어야 할 때도 있지만 홈쇼핑에서 1만 원짜리 바지를 산 후 즐거워하고, 후배들에게 딸 옷을 얻어와 좋아하는 여느 평범한 주부와 비슷하다. 그의 이런 모습을 22일 방영되는 KBS 2TV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에서 볼 수 있다. 황신혜는 어느덧 '컴퓨터 미인'에서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친근한 '우물가 미인'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