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블러디 선데이> 정성일 영화평론가
2004-06-22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나는 오늘 뉴스를 믿을 수 없었어, 난 눈을 감을 수 없었고,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걸까, 얼마나 오래 오늘밤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 거야, 아이들 발아래 깨어진 병들, 막다른 골목을 뒤덮은 시체들, 그러나 나는 전쟁의 부름에 망설이지 않을 거야. 내 등을 기대고, 벽에 내 등을 기대고, 일요일, 피의 일요일”

록 그룹 U2의 세 번째 앨범 <전쟁>의 첫 번째 트랙 ‘일요일, 피의 일요일’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 피의 일요일은 1972년 1월 31일 북 아일랜드 데리시에서 벌어졌다. 영국 정부의 불법 억류에 반대하고 시민권을 주장하기 위하여 데리시는 평화 행진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같은 시간에 영국정부는 모든 집회와 시위는 불법이며, 따라서 원천봉쇄 하겠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풍경. 데리 시민권협의회 대표이자 영국의회 하원의원인 아이반 쿠퍼는 비폭력시위만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시민들에게 참여를 하소연한다. 같은 시간에 영국 공수부대가 도착한다. 결국 피는 흘려야만 한다.

역사는 없고 사건만 있다, 북아일랜드 데리는 광주가 아닌데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한 <블러디 선데이>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그날의 24시간을 따라간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들고 찍었으며, 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그날 그 장소에 온 것 같은 숨막히는 현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린그래스의 관심은 말 그대로 그날 그 장소에 가는 것이다. 영화는 시위를 주도한 아이반 쿠퍼와 군지도부 사무실, 그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죽은 다음 그의 손에 총이 들려지면서) 테러범으로 조작 당한 17살 소년 제리 도너히, 그리고 공수부대 통신병 로마스 일등병 사이를 오간다. 검은 화면의 페이드를 인서트하면서 서로 다른 네 개의 입장을 시종일관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는 그날의 데리시를 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날 데리시에 ‘정말’ 있었던 사람들과 죽은 이들의 유족들이 모여서 다시 한번 비극을 재현한다. 그린그래스의 목표는 명확하다. 그는 그날 그 장소를 다시 한번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종일관 텔레비전 방송 ‘라이브’ 중계를 하듯이 찍혀졌다. 아무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며, 일체의 효과음을 배제하고 대부분 동시녹음으로 현장음을 살려서 생생하게 전달하는 사운드가 오히려 화면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이 모든 것은 물론 감동적이며, 때로 탄식하게 만들고 온 몸에 밀려오는 분노로 보는 내내 몸을 뒤척이게 만든다. 그건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때 비로소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북아일랜드의 무장독립단체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입장이 없는 것은 이상하다.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의 복잡한 정세와, 아일랜드 내의 과격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데리시의 평화행진 시위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이 영화는 침묵한다. 오직 그날 그 사건의 재현만으로 이 영화는 자기 할 일을 다 한다. 눈물의 역사는 없고 피에 젖은 사건만이 있다.

그래서 데리시의 참살은 400년의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협상 아래 여전히 반복될 수밖에 없는 비겁한 무능과 속임수와 교활한 타협의 필연적인 산물로서의 영원한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이 영화는 살짝 비켜선다. 그 대신 자유와 인권을 향한 시민들의 시위와 바보 같은 군대가 정부의 명령 아래 저지른 무고한 살인을 고발한다. 그때 가해자의 구체적인 역사는 숨고, 희생자의 슬픈 명단만이 넘겨진다. 하지만 시민과 군대의 전쟁이라는 이분법은 역사를 추상적 수준으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법정으로의 소환이 지닌 오류다. 북아일랜드 데리는 광주가 아니며, 칠레의 산티에고가 아니다. 그걸 같은 수준으로 말하면 안 된다. 칼날을 내리칠 때 우리가 역사를 추상화시켜버리고 대상을 괄호 치면 결국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혹은 그 누구도 죄인이 아니며, 그 모두가 희생자다. 알고 보면 모두가 불쌍하다고 나는 그게 엿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노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U2의 노래 ‘일요일, 피의 일요일’은 이렇게 끝난다.

“사실은 거짓이 되고 텔레비전이 리얼리티가 될 때, 우리가 무뎌지는 건 맞아, 그렇지만 오늘 수백만 명이 울었어, 내일 그들이 죽는 동안 우리는 쳐 먹고 마실 거야, 진짜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거야, 예수님이 이겼던 그 승리를 선언하기 위하여, 일요일, 피의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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