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아는 여자>의 이나영, 이번에도 선머슴인걸
2004-06-22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윤운식 (한겨레 기자)
안 꾸며도 충분히 예쁠거라고 감독들은 생각했겠지만‥

이나영(25)은 아름답다. 토 달 사람 있을까. 다만 웃을 때 입과 턱의 좌우대칭이 어긋나고, 눈이 좀 많이 커 보이고, 이마도 넓은 그 얼굴을 두고 ‘개성있다’ ‘중성적이다’ ‘외계인같다’ 등등 수사가 다양할 수는 있다. 화장해 놓으면 누가 누군지 구별이 잘 안 되는 표준형 미인 배우들과 비교할 때 이나영은 확실히 다르고, 그 남다름을 다 합쳐서 이나영의 아름다움이 된다.

그런데 이나영이 출연한 영화들은 그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지 않았다. <후아유> <영어완전정복>, 곧 개봉할 <아는 여자>까지 세편 모두에서 이나영은 선머슴같다. 먼저 남자를 짝사랑하면서 여성스런 애교 하나 부리질 못한다. 거기까진 영화 속 캐릭터 탓이라고 쳐도, 한 장면 쯤에서 섹시해 보이게 하는 연출의 배려도 없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히로인을 이렇게 대접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왜 그럴까. 이나영 스스로 꼽은 이유 첫번째. “광고를 통해 알려진 (예쁜) 이미지가 있잖아요. 감독들에게 그게 영화에 들어가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같아요. 화려한 색 옷 입고 싶어도 피하고, 바지도 허리 32인치 짜리 남자바지 입고. 왜냐면 (<영어완전정복>의) 문수가 저를 안 좋아해야 하니까, 또 (<아는 여자>의 남자 주인공인) 치성이가 어릴 때부터 한 동네 살았던 저를 알아보지 못해야 하니까.” 이유 두번째. “(최호, 김성수, 장진) 감독들이 여배우와 많이 작업을 안해 본 사람들이라, 그 분들이 간지러워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럼 이나영은 희생자이기만 했을까. 이유 세번째. “자연스럽게 한 걸 예쁘게 봐주면 좋은데, 예뻐 보여야 한다면 부담이 있어요. 의상, 헤어, 메이크업 완벽해야 하는데…. 그간의 캐릭터가 편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나영은 지금까지 귀고리 한번 안 해봤다고 했다.)”

<아는 여자>에는 이나영이 남자 주인공 치성(정재영)이 사온 빨간 드레스를 입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로맨틱코미디에서 이런 장면의 의도는 분명하다. ‘선머슴같기만 한 줄 알았더니 어! 섹시하네’ 하는 느낌을 관객에게 주자는 거다. 그런데 이 영화의 빨간 드레스는 당최 크고 어깨선, 허리선 다 구식이어서 도무지 섹시하지가 않다. 이런 옷일줄은 이나영도 몰랐다. “감독님이 ‘누가 봐도 어색한 드레스를 가져오라’ 그랬어요. 저도 어색했고 영화에서 어색해하는 표정이 제 느낌 그대로예요.” 장진 감독은 정재영 등 연극계에서부터 친했던 배우들과 함께 ‘필름있수다’(약칭 수다) 팀을 꾸리고 있다. 이번 영화에도 수다팀이 대거 참여했고, 수다팀끼리는 사소한 것 가지고도 서로 잘 웃는다. 그럴 때 자주 이나영은 이랬다. “저 재미 없는데요.” 장 감독 앞에서 <화성에서 온 사나이>의 시나리오를 그가 쓴 줄 모른 채 그 영화를 비판했다. <아는 여자> 촬영 땐 “인물의 그림이 잘 안 그려져” 수시로 장 감독을 졸랐다. “감독님, 설명해주세요. 이 여자 어떻게 해야 해요 ” 앞에 말한 ‘공포의 빨간 드레스’는 혹시 이런 솔직함이 초래한 보복 아닐까. “아, 그랬나 봐요.(웃음)”

안 꾸며도 충분히 예쁠 거라고 감독들은 생각했겠지만, 이나영의 분위기는 중성적인 이미지로 굳어지기엔 그보다 훨씬 풍부하다. 이나영 스스로도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제 마음이 움직였으니까 외관상으로도, 작품에서도 그게 나타나지 않을까요.” 이나영을 ‘예쁘게 찍고 싶다는’ 한 감독과 신작 얘기가 있었으나 제작이 미뤄진 뒤 아직은 차기작을 결정하지 못했다. “아쉬운 건 여배우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잘 안 하잖아요. <킬빌> 보고 (<후아유> 프러듀서인) 심보경 언니에게 그랬어요. <킬빌> 안 찍어요 저 등근육 만들까요 <더티 댄싱> 안 만들어요”

인터뷰할 때 이나영은 그 또래 다른 여배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자연스럽게 말한다. 수사가 적은 그의 말투엔 미리 준비해온 것 같은 느낌이 없다. 액면 그대로의 자기 생각과 느낌으로, 인터뷰라기보다 대화하듯 말한다. 그가 오래전부터 출연했던 한 화장품 회사 광고에 얼마전부터 전지현이 그와 교대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전지현과) 비교하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저도 전지현씨 좋아해요. 저도 예쁜 사람 좋아하는 편이어서. 선의의 라이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둘에게 가는 시나리오가 전혀 다를 걸요.”

<아는 여자> 어떤 영화? 시한부 청년을 짝사랑해‥그런데 썰렁

야구선수인 동치성(정재영)은 애인에게 채이고 사랑에 대해 회의하던 바로 그날, 의사에게서 뇌종양으로 살 날이 세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는다. 단골 스탠드바에 가서 술을 먹고 뻗었다. 여자 바텐더 한이연(이나영)이 동치성을 업고 여관에 데려가 재운다. 깨어난 치성과 통성명만 하고 여관을 나왔지만, 이연은 중학교 시절부터 같은 동네 살던 치성을 짝사랑해왔다.

전형적인 멜로의 설정인 <아는 여자>는 감독이 장진임을 강변하듯, 이런저런 소동극을 삽입하면서 신파적 감성이 숨쉴 곳을 차단하려고 애쓴다.(그를 통해 신파적 감성이 역설적으로 극대화하기를 의도한다.) 사건이 꼬여 치성은 도둑으로 몰리고 이연의 집에 함께 묶게 된다. 뒤늦게나마 이연의 속마음을 알게 되지만 곧 죽는다는 생각에 그걸 헤아릴 여력이 없다. 독특한 멜로로 볼 수도 있지만 <아는 여자>는 아쉬움이 더 큰 영화다. 변주에 힘을 쏟는데, 막상 주 선율이 부실하다. 상황은 보이지만 갈등이 잘 안 읽힌다. 유머는 썰렁개그에 가까와지고 페이소스는 줄어든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