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낙도 주민들의 요절복통 의사선생 유치작전, <대단한 유혹>
2004-06-22
글 : 김혜리
캐나다 낙도 주민들의 요절복통 천태만상 의사선생 유치 작전

망망대해에 쪽배처럼 떠 있는 캐나다 퀘벡의 작은 섬 생 마리. 한때 이곳에서 고기잡이는 엄숙하고 열정적인 제의였고 하루 열네 시간의 노동을 마친 사내들과 여인들의 잠자리는 온 우주의 불화를 다 잠재울 듯 흡족했다. 그러나 어획량이 줄고 경제발전이 낙도를 비껴가면서 섬사람들의 삶에는 이끼가 낀다. 언젠가부터 일거리가 떨어진 어부들은 배를 띄우는 대신 연금을 받기 위해 우체국 앞에 줄을 선다. 먹고사는 건 둘째다. 주민들은 국가의 시혜가 아닌 노동의 대가로 밥을 먹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워한다. 시장과 경찰마저 생 마리 섬을 등지고 떠나자, 터줏대감 제르맹(레이몽 부샤르)과 친구들은 일자리를 돌려줄 플라스틱 공장 유치에 팔을 걷고 나선다. 하지만 공장 설립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따르니, 섬에 상주하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항목이 그것이다. 의사들에게 보낸 구인광고가 족족 퇴짜를 맞던 어느 날, 방탕한 도시생활로 눈밑이 그늘진 몬트리올의 성형외과 의사 크리스토퍼(다비드 부탱)가 상륙한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한달간의 봉사활동을 명령받아서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착시키는 것만이 섬의 살길이라고 판단한 제르맹은 마을 회의를 소집한다. 이리하여 역사상 유례없이 순박한 성품을 소유한 대형 사기단(?)이 결성되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에 버금가는 집단적 음모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영화 제목의 ‘대단한’은 유혹의 강도가 아니라 유혹의 규모를 일컫는 표현이다. 의사 선생이 좋아하는 퓨전 재즈로 매일 고막을 고문당하는 마을 청년의 희생이 있는가 하면, 의사가 다니는 길에 날마다 지폐를 흘려두는 은행원이 있다. 레스토랑은 오직 한 손님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듣도 보도 못한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오늘의 요리로 선정한다. 의사가 크리켓광이라니까 마을 남자들은 갑자기 규칙도 모르는 크리켓 선수로 변신하고, 의사가 맨발에 끌린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마을 여인들은 죄다 발가락 열린 샌들을 신고 주위를 얼쩡거린다.

몇몇 관객은 <대단한 유혹>에서 어촌의 생명력을 노래한 이자크 디네센의 소설이나 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 온 세상이 연극을 하는 <트루먼 쇼>를 연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대단한 유혹>은, <잉글리쉬맨> <브래스드 오프>류의 영국식 공동체 코미디와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미국 코미디 <할리우드 박사>의 노골적 조합이다. 의사의 취향을 알아내겠다고 불법 도청도 불사하는 생 마리 섬의 주민들은, 죽은 친구의 복권 당첨금을 마을에 귀속시키려는 <웨이킹 네드>의 촌로들이나 착한 미망인의 마리화나 재배를 감싸는 <오! 그레이스>의 이웃들처럼 바깥세상의 법과 도덕에 무심하다. 한편 몬트리올에서 온 의사 크리스토퍼는, 성형외과를 차려 성공하겠다고 캘리포니아로 향하다가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촌락에 주저앉고 급기야 생각을 고쳐먹는 <할리우드 박사>의 마이클 J. 폭스와 같은 길을 걷는다. <대단한 유혹>이 상기시키는 여러 영화 중에서도 신인 장 프랑수아 풀리오 감독이 지목한 직접적 영감의 원천은 <풀 몬티>. 피터 카타네오 감독의 <풀 몬티>가 스트리퍼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남성성과 실업에 관한 영화인 것처럼, <대단한 유혹> 역시 거짓말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낙오한 섬사람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섬 남자들의 자존과 자조(自助)에 관한 영화다. <풀 몬티>의 셰필드 철강 노동자들이 그랬듯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한 생 마리 섬의 어민들은 단순하고도 고귀한 협동심을 발해서 노동의 기회를 되찾고 끝내 남자들의 성적인 매력을 회복한다.

그러나 <대단한 유혹>에는 <풀 몬티>나 <브래스드 오프> 같은 영화에서 익살스런 상황이 자아낸 미소가 순간적으로 얼굴에서 얼어붙게 만들었던 슬픔의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장 프랑수아 풀리오 감독은 유머도 순하게 감상도 순하게 통제해 융화시키는 욕심없는 균형감각을 전략으로 세우고 나름대로 훌륭히 성취한다. 코미디는 어리숙할 정도로 조촐하지만 불발탄 없이 스토리의 적재적소에 배치됐고, 관객의 눈에 금세 얼굴을 익히는 120명의 주민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매스게임하듯 만들어내는 순박한 비주얼 조크도 효과적이다. 비록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생략됐고 인물형도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지 않지만 희화화의 수준은 불쾌감을 자아내지 않는 선을 현명하게 지킨다. 2004년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고 캐나다의 프랑스어 사용권에서 흥행 성공을 거둔 비결을, 영화를 보는 즉시 납득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유혹>의 스토리는 한 남자와 한 여자 대신 섬 마을과 개인 사이에서 일어났을 뿐이지, 멜로드라마의 구애와 다를 바가 없다. 상대에게 솔직히 곁에 있어달라 청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없어 고민하던 이의 짝사랑이 기적 같은 결실을 보는 로맨스, 오 헨리의 단편에 곧잘 등장하는 계급을 속인 남녀의 연애 말이다. 그러므로 <대단한 유혹>의 거짓말이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오 헨리의 거짓말쟁이 남녀가 어떻게 해결책을 찾았던가를 더듬어볼 일이다.

:: 촌락 공동체 영화

조화로운 앙상블코미디의 묘미

이만하면 하위장르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주로 일링 코미디의 전통과 밀착한 영국의 특산물로 알려진 ‘커뮤니티영화’들의 수가 만만치 않다. 1995년 칸영화제에서 예술영화와의 기 겨루기에 지친 관객에게 환호를 얻었던 <잉글리쉬맨>은 ‘언덕을 올라갔다 산을 내려온 잉글랜드인’이라는 제목대로, 잉글랜드에서 측량사가 파견되자 마을의 언덕을 지도 위에 산으로 등재되게 만들려는 일념으로 합심해서 흙을 퍼다 나른 웨일스 사람들의 이야기. 양동이를 들고 무리지어 산을 오르는 무모한 시도가, ‘100명으로 200명인 척하기’를 성공시킨 <대단한 유혹>의 어민들 못지않다.

탄광촌 브라스 밴드 이야기 <브래스드 오프>는 <풀 몬티>와 마찬가지로 산업화의 흐름 속에 잉여인간이 된 남자들이 다른 수단- 음악- 을 통해 사회적 쓰임새와 관계를 재확인했다. 공동체와 비공식적 합의가 자본주의적 질서와 관료적 법의식에 선행한다는 것도 이들 촌락 공동체 영화의 공통점이다.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웨이킹 네드>는 심장마비로 죽은 이웃이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안 주민들이 그의 죽음을 숨기며 당첨금을 받아 나누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위스키 갤로어!>는 스코틀랜드인들의 밀수 소동을 웃음의 소재로 골랐고 브렌다 블리신 주연의 <오! 그레이스>는 남편의 어이없는 죽음 뒤에 빚을 짊어진 선량하고 상냥한 시골 부인이 마리화나를 수경재배하고 성직자를 포함한 이웃의 친구들이 그녀를 돕는다는 이야기다. 중앙 정치권력이 상징하는 지배 질서에 부드럽게 딴죽을 걸면서도 축제 분위기에 안성맞춤인 공동체 영화들은 영화제 관객상의 단골들이다. <오! 그레이스>도 200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탔다. 이 밖에 <쿠키스 포춘> <로컬 히어로> 등이 있다. 조화로운 앙상블 연기도 공동체 코미디의 묘미. 반면, 지방색에 천착하다보면 순박한 인물들이 캐리커처로 단순화되는 것이 이 하위장르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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