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부문 대상 <오세암>, 꾸준한 장편 제작과 3D테크놀로지 등으로 주목받아
“장편부문 크리스털은… <오세암>!” 현지시각으로 지난 6월12일 폐막한 2004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한국 작품 <오세암>이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2002년 안시에서 같은 상을 받은 이성강 감독의 <마리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작품이 안시 그랑프리의 상징인 삼각 크리스털 상패를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객석의 환호 속에 폐막식 무대로 나아간 <오세암>의 성백엽 감독은 “여기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을 받게 돼서 더욱 영광”이라며 안시와 심사위원들, 특히 제작자인 마고21 이정호 대표에게 감사를 표했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호평을 받았던 <오세암>의 수상은 어느 정도 기대를 모았던 결과.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 작가 빌 플림턴의 <헤어 하이>(Hair High)가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 <뮤턴트 에일리언>으로 이미 두번이나 안시 장편 그랑프리를 수상한 감독의 작품인데다 전작보다 좀 심심하고, 스페인산 영웅담 <엘시드: 전설의 영웅>은 매끄러운 만듦새가 돋보이지만 익숙한 디즈니 스타일이라 안시에서 최고상을 주기엔 애매할 것이란 평이 분분한 가운데 따뜻한 서정과 한국적인 이미지를 담은 <오세암>의 선전이 기대됐던 바다.
<오세암>에 이어 <축 생일>(Birthday Boy)이 단편경쟁에 오른 52편 가운데 신인감독에게 주어지는 장 뤽 시베라상을 받은 것은 좀더 뜻밖의 쾌거라 할 만하다. 5년째 호주에서 독립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세종 감독의 <축 생일>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 황량한 마을을 누비며 혼자 못을 갖고 놀고 전쟁놀이를 하던 소년은 집으로 돌아와 우편물을 발견한다. 소년은 우편물 상자를 선물인 양 기쁘게 풀어보지만, 그 속에 든 것은 가족사진과 군번줄 등 아버지의 유품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소년의 천진난만함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드러내는 <축 생일>은 페스티벌 후반부에 상영돼 입소문이 났던 작품. 가슴 뭉클한 내용을 아이다운 표정과 동작을 살린 캐릭터, 매트페인팅으로 세심하게 그려낸 판잣집과 마을 풍경 등 출중한 3D 영상에 담아낸 <축 생일>은 결국 감독에게 데뷔작으로 안시 트로피를 받는 특별한 추억을 안겨줬다.
한국 특별전 상영작만 50편… 곳곳에 한국색 넘쳐
특히 6월8일 봉리유 센터 내 메인 상영관인 테아뜨르에서 상영된 <원더풀 데이즈>와 <오세암>은 장내를 가득 메운 관객에게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는 사상 최대의 제작비와 흥행 부진 논란에 다소 묻혔던 독특한 이미지의 스펙터클은 안시의 젊은 관객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고, 덕분에 7월 <원더풀 데이즈>의 프랑스 개봉을 앞둔 배급 관계자들도 한시름 놓았다는 후문. <오세암>의 경우, 슬픈 결말 때문인지 객석의 분위기가 숙연해진 가운데 훌쩍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박수를 들을 수 있었다. 만화와 스토리보드, 애니메이션 등을 다루는 프랑스 잡지 <스토리보드>의 기자 알렉시스 위노는 “상업 애니메이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야기와 전통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가 돋보인다”며 <오세암>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단편 중에서는 끝없는 기둥을 오르는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내용이 감동적이라는 해외 기자들의 호평과 주목을 받았던 김준기의 <인생>, 유머감각이 두드러지는 단편들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 특별전의 ‘Think Twice and Laugh’ 섹션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수상자들의 수상소감
“이 작품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어머니”
성백엽/ <오세암> 장편 그랑프리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 유치가 다 어렵지만 특히 서정물이나 비상업적인 작품은 더 어려운데, <오세암>을 제작할 수 있게 해준 이정호 대표에게 정말 고맙다. 각고의 시간을 같이 겪으면서 마무리해준 동료 스탭들도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고. 또 돌아가신 어머니께도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30년 세월이 흘러 이제 모습도 추억 속에 흐려지고, 그리움도 퇴색했지만 이 작품을 진심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 덕분인 것 같다. 안시에 와보니 사람들이 축제 자체를 즐길 줄 알고,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이란 개념을 포괄적으로 생각해선지 관심도가 높다는 게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성 관객의 부정적인 시각이 좀더 희석되고, 만드는 사람도 상업성뿐 아니라 장르의 다양성, 관객에게 좀더 다가갈 수 있는 진심을 갖는다면 더 많은 이들이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 손으로 나를 중독시키는 작업이었다”
마이크 가브리엘/ <로렌조> 단편 그랑프리
감동이다. 난 지금껏 국제적인 경쟁에 나가본 적도, 단편을 만들어 본 적도 없다. 25년 동안 애니메이션을 해왔는데, 이제야 세계 애니메이션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 것 같다. 이 클럽에서 환영받는 것 같고, 한 형제가 된 것 같은 느낌. <로렌조>는 디즈니에서 제작한 작품이지만,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면에서 아주 자유로운 작업이었다. 같이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하다보니 일이 많긴 했다. (웃음) 그래도 온전히 작품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좋았고, 내가 취하게, 중독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또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디즈니도 라이브러리를 어떻게 채워갈지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재정비하고자 하기 때문에 다시 기회가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