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동키가 소개하는 장화신은 고양이
2004-06-24
글 : 오정연

아찔한 섹시함, 사랑스런 이중성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슈렉과 피오나의 영원한 가족이자 유쾌한 말발의 소유자, 동키입니다. 우선 3년 동안 저의 컴백을 손꼽아 기다려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요. 네? 뭐라고요? 잔소리 말고 빨리 장화 신은 고양이나 소개하라고요? 3년 만에 여러분들을 만났다는 기쁨에, 곱디고운 용부인도 두고 달려온 저한테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뭐니뭐니해도 <슈렉>의 성공에 관한 한 일등공신인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앞뒤 모르는 기자들이 고양이들의 세상이 왔다면서 유언비어성 기사를 쓴다 해도, 저는 인정할 수가 없군요.

그놈 첫인상은 정말 더러웠습니다. 기분 나쁘게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가는 눈동자를 번뜩이는데… 엄청난 자객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거든요.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그건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이라는군요. 갑자기 죽을 듯이 기침을 해대면서 털뭉치를 뱉어내는 것도 마찬가진데, 그게 목에 걸려서 죽는 고양이들도 있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그게 다 평소 자기 몸을 혓바닥으로 청소하다가 먹은 털이 뭉쳐서 그렇게 된 거래요. 그러면서도 악착같이 자기 몸을 핥아대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나, 싶어요. 되는 대로 배 두드리면서 즐겁게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저랑 어긋날 수밖에 없는 것도 다 그런 이유죠.

결정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그 이중성이었습니다. 있는 대로 거드름을 피우면서 발톱을 세우던 녀석이 슈렉의 한방에 그처럼 애교모드로 돌변할 줄 누가 알았겠냔 말이죠. 절 보십쇼. 삐죽한 귀에 짤뚱한 다리, 잘못하단 땅에 닿을 것 같은 배를 안고 살아가는 이 동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얻어낼 수 있을 만한 놈의 커다란 눈이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저 같은 놈이 서클렌즈 몇개를 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공격무기죠. 그러나 외모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겁니다. 사람, 아니아니 모름지기 포유류라면 초지일관, 일편단심… 뭐 그런 맛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왕의 사주를 받고 슈렉을 처단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털북숭이 녀석이 슈렉의 넓은 어깨를 차지하는 건 말도 안 되죠. 내 친구 슈렉이 그런 놈에게 마음을 뺏길 때, 제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짐작하시겠죠? 녀석이 슈렉에게 귓속말을 소곤거릴 때는 아예 슈렉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침을 해대는 그 얄미운 이중인격자가 <반지의 제왕>의 골룸과 정말 닮은꼴이네요. 아… 샘! 자네를 이제는 이해하네.

하지만 뭐, 알고보면 놈이 사실 표리부동한 건 아닙니다. 원대한 야망이나 목표를 가진 녀석이 아니라서, 그냥 순간순간 자기가 원하는 걸 찾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살 뿐이죠. 그게 ‘미친 인생’(La Vida Loca)이라도 놈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겁니다. 남이 뭐라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우리가 좀 통하는 구석이 있어요. 게다가 그처럼 되는 대로 사는 놈이 한번 마음을 주면 나름의 신의를 지킬 줄도 알거든요. 자신의 공격무기 1호를 우리를 위해 사용하기도 했으니까. 놈의 고고고조 할아버지는 형들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뺏기고 빈털터리가 된 주인을 공주와 결혼시키고 왕으로 만들었다나요. 그게 다 자기한테 장화 한 켤레를 구해준 데 대해 보답하기 위해서였다니…. 하여간 고양이들이 사소한 거에 집착하고, 잔꾀 많은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그리고, 녀석이 좀 섹시한 것도 사실이죠.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목소리를 빌려준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이, 놈이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모습이나 기지개를 켜는 모습은 확실히 아찔한 구석이 있거든요. 암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저는 장화 신은 고양이와 잘 지내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장화 신은 고양이와 제가 화끈한 무대를 선보였던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는군요. 무슨 노래를 불렀냐고요? 그런 걸 미리 말해드릴 순 없죠. 제가 했던 말 중에 힌트가 있으니까 한번 찾아보시죠. 이런, 서론이 너무 길었군요. 녀석이 지나가던 파리 한 마리랑 놀다가 지금은 느긋하게 햇볕을 쬐면서 졸고 있네요. 자, 여러분~ 빛나는 털을 자랑하는 혈통있는 고양이도 아니지만, 장화와 깃털모자만 있으면 매력이 넘치는 바람둥이, 장담하건대 앞으로 숱한 동물 캐릭터들을 제치고 열렬한 사랑을 받을 것이 확실시되는 스타, 장화 신은 고양이를 소개합니다!

사진제공 드림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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