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아는 여자>,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06-29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정말 뭔가 ‘아는 여자’ 이나영 영화가 보고 싶다

태풍 전야처럼, 극장가도 여름용 2차 대박 영화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전야다. <트로이> 등을 비롯한 1차 대박 영화가 한차례 지나가고,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와 <스파이더맨 2>가 대기하고 있는 사이, <아는 여자>와 <인어공주> 등의 비교적 작은 영화들이 폭염 속에서 관객을 찾고 있다.

<아는 여자>는 한이연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여자 역할을 맡은 이나영의 연기가 없었다면, 상영 시간을 다 채우기 힘든 영화일 수도 있다. 팬 사이트인 ‘나영 외계인’이라는 사이트 제목처럼 이나영은 그와 유사한 이미지를 찾기 힘든 희귀한 배우다. 내가 그에게 반한 것은 <천사몽>(2000)이라는, 기획 의도는 좋으나 좋은 것은 바로 거기까지인 영화에서 미래의 전사 역을 할 때다. 에스에프 장르에 어울리는 고감도의 긴장감을 내장한 이나영 때문에 나는 그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불행하게도 <영어완전정복>도 이나영이 아니었다면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재능 있는 여배우 혼자서만 분투하는 영화들을 계속 보기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여하간, 2군 야구선수 동치성(정재영)의 시침 뚝 뗀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는, 웃기 애매한 유머와 잘 넘어가는 웃음이 적당히 혼재한다. 동치성은 여자 친구에게 이별 선언을 들은 날, 시한부 생명 선고까지 받는다. 바에서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은 그는 바텐더에 의해 여관으로 옮겨지는데, 바로 그 바텐더가 동치성을 오랫동안 사모해온 한이연(이나영)이다. 서울의 비교적 한적한 주택가, 구옥과 양옥이 사이좋게 섞여있는 동네가 영화의 주공간인데, 결과적으로 한이연은 사실 동치성의 이웃 처녀였으며 “아는 여자”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동치성은 잘 모르는 여자들과 십여년 만나느라 허송세월하면서 아직 첫사랑도 하지 못했다. 반면, 한이연은 동치성의 행보를 쫓아 삶의 계획을 짜느라 동치성이 출입하는 바의 보조 바텐더로 취직하는 등, 심약한 스토커로 꽃다운 인생을 허송세월하고 있다.

이 둘의 허송 인생이 질적 전환을 하는 계기는 물론 우연이 만들어준 필연에 의해 마련되는데, 그것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 텍스트에 견디기 힘든 하중을 부가하는, 이미 발생한 죽음과 예견된 죽음이다. 이 두 남녀가 사실 이웃집 처녀·총각임은 이미 지적한 사실. 그들의 부모들이 동네 주민 단체 여행을 함께 떠났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것이 전자요, 동치성의 악성 종양에 의해 촉발된 시한부 인생이 후자다. 영화 <아는 여자>는 로맨틱 코미디와 어긋나는 그 참을 수 없는 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약하기 짝이 없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일관한다. 그러다가 부모들의 죽음은 이해할 수 없는 블랙 코미디류로 처리하고, 악성 종양은 오진으로 돌려버린다.

이러한 지리멸렬 속에서도 이나영은 10여년을 짝사랑하는 여자다운 눈물을 신빙성 있게 흘리고, 좋아하는 남자와 차마 눈길을 마주치지 못하는 불안한 시선을 곧잘 처리한다. 그리고 헐렁한 트레이닝복과 단순한 흰색 셔츠를 입어도 예쁘기만 하다. 지난번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도 지적했지만, 이즈음의 로맨틱 코미디는 육체적으로는 성인이며 사회적 관계에서는 유아인 남녀의 소위 순수한 첫사랑을 보여주느라, 영화 내내 키스 한번 제대로 하는 법이 없다. 섹스 담론 과잉인 동시대에 대한 반응인 듯도 싶지만, 영화가 끝나도록 자라지 않는 성인인 소년·소녀 이야기는 무더위 속에서 그리 상쾌하지 않다. 이나영을 정말 뭔가 아는 여자로 재현해내는 영화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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