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언 형제의 맥빠진 리메이크작 <레이디 킬러>
“다양한 인간군상의 도둑 무리가 클래식 연주자들로 변장해서 음모를 꾸미지만, 방을 빌려준 얼뜨기 노파에 의해 그 계획이 좌절되고 만다”는 내용의 1955년 작품 <레이디 킬러>(영국 일링스튜디오, 감독 알렉산더 매켄드릭)는 기발하면서도 재치가 넘치는 훌륭한 코미디영화였다. 하지만 코언 형제의 이번 리메이크작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쓰레기 운반선과 이를 내려다보는 교각의 흉상 조각들은 이 영화 전체에 대한 하나의 은유적 이미지로 읽히기까지 하며, 솔직히 이번 작품은 ‘lady-killer’는 고사하고 ‘time-killer’도 못 된다는 느낌이다.
런던의 교외지역에서 미시시피 유역의 빌록시로 배경을 바꾼 코언의 <레이디 킬러>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덜 사악한 주모자 G. H. 도르(톰 행크스)와 일견하기에도 훨씬 더 무시무시한 주인집 아주머니 먼슨 부인(이르마 P. 홀) 사이에 싸움을 붙여놓는다. 하나님을 경외해 마지않는 먼슨 부인은 “힙인지 합인지 하는” 음악에 불평을 쏟아놓는 성질 사나운 인물이자 밥 존스 대학에 기부하는 것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는 우둔한 인물이기도 하다(조지 부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밥 존스 신학대학의 인종주의적 과거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사실 그녀가 느끼하기 그지없는 도르 교수를 단 일분이라도 감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캐릭터만큼이나 의아한 부분이다.
전작에서 알렉 기네스가 맡았던 역을 소화하면서 톰 행크스는 (마치 무성영화 시대의 연기자 론 체니의 그것과도 같이) 뒤틀리고 기괴한 외양을 이용해 악마적 매력을 발산시키려는 의도로 역겨울 정도로 긴 의치(義齒)를 해넣었는데, 유창하고 허풍스러운 수다와 낄낄거리는 웃음을 연신 남발하는 그의 연기는 강하게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셰익스피어극처럼 묘하게 과장되어 있다. 이 배역이 톰 행크스에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연기는 메릴 스트립식의 경이로운 변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서 인상을 구겨보아도, 거기에서 악마적 느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출신의 떠버리 단원으로 출연한 TV스타 말론 웨이언스가 흑인 시트콤의 장광설을 보태며 극의 전개에 (특히 J. K. 시몬스가 연기한 멍청이 기술자 캐릭터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지만, 치 마가 연기한 과묵한 듯하면서도 불같은 성격의 전직 베트남 장군과 라이언 허스트가 연기한 얼빠진 전직 미식축구 선수 캐릭터는 이들 캐릭터들과 전혀 융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영화 <레이디 킬러>는 “캐릭터 없는 캐릭터코미디”라고 하겠다. 전작 <레이디 킬러>는 선량한 시민이 위험천만한 악당들에게 위협받게 된다는 당시 할리우드 강탈드라마의 극적 전개를 기만하고 있는데, 이런 독창성으로 인해 시체가 쌓여갈수록 웃음의 강도도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백인 범죄자와 그의 하수인들이 늙은 흑인 노파를 제거하려 한다는 설정이 꺼려져서인지 코언 형제와 그의 캐릭터들은 무미건조하게 한 걸음 물러서 있다. 범죄코미디가 두 형제 감독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영화 <레이디 킬러>는 놀라울 정도로 수줍어 보인다.
코언 형제의 리메이크 <레이디 킬러>는 관객을 자극하기 위해 무성의하게, 하지만 끈질기게 삽입되는 손가락 절단장면이나 설사에 관한 농담 등에서 볼 수 있듯 억지로 메워넣은 뒷이야기들과 지겹게 늘어지는 범죄의 디테일들에 더욱 목을 매고 있다는 느낌이다. 때문에 살해되는 것은 노파가 아니라 영화 자체이다. 영화의 플롯은 한없이 늘어지고, 매켄드릭의 전작에서 기가 막힌 타이밍을 제공했던 노파와 갱들간의 전쟁이라는 중심추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영화 속에서 모든 웃음은 전보 찍듯이 단조로운 리듬으로 반복되고, 모든 농담은 바닥을 치고 있다. 코언 형제는 죽은 먼슨 부인 남편의 초상을 이용해 장면마다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시도들에 대해 시각적인 코멘트를 제공하고 있다.
망가진 코언 형제의 값어치는 영화 속에서 요란스러운 가스펠 장면을 통해 문득문득 되살아나는 듯하지만 여기에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가 보여준 영화적 지역색의 대용품 비슷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블라인드 윌리 존슨에서 샘 쿡, 솔 스터러로 이어지는 음악의 돌발적이면서도 전략적인 배치가 두 감독이 진정으로 신경쓰고 있는 것이 영화가 아니라 사운드트랙 CD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끔 해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