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예뻐서 뜬 ‘여우’ “나 좀 망가뜨려줘”
2004-07-02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만약 <슈렉>이 실사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여주인공 피오나 공주역은 누가 맡게 될까 카메론 디아즈가 목소리 연기를 했으니 언뜻 그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피오나는 만화계 공식 지정 추녀다.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처럼 정말 뚱뚱한 데다 얼굴도 함지박만한 인물이 캐스팅될 리는 없다. 제작자는 차라리 수십만불을 들여서라도 카메론 디아즈같은 미인의 얼굴에 주름과 주근깨를 만들고 개미허리같은 가느다란 몸에 젤라틴 덩어리를 붙여대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그것이 할리우드의 또는 상업영화의 전략이다.

그래서 도리어 미녀들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 뿐 아니라 그들의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됐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살벌하게’ 구질구질한 카메론 디아즈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슈퍼뚱녀 귀네스 펠트로처럼 말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괴물’ 여성이 등장하는 <몬스터>(사진)는 미녀배우 샬리즈 테론에 의한, 샬리즈 테론의 영화다. 주연과 제작까지 겸한 테론은 이 영화로 오스카와 베를린을 비롯해 열개도 넘는 연기상을 수상했다. 주연배우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몬스터>를 보면서 <이탈리안 잡>이나 <트랩트>의 우아하고 고혹적인 미녀를 떠올리기는 불가능할 지경이다. 테론은 이 영화에서 아일린 워노스를 연기하기 위해 몸무게를 15㎏이나 불리고 불편한 가짜 치아를 덧붙였다고 한다.

우스운 건 실제 인물인 아일린 워노스의 사진과 비교해도 변신한 테론 편이 훨씬 더 못생겼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드는 두가지 의문. 굳이 실제 인물보다 더 추하게 망가질 필요가 있었나와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의 변신임에도 굳이 미녀배우를 쓸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테론이 노 개런티로 덤벼들었기 때문에 ‘덜’ 생긴 배우 중엔 그만한 연기력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그럴리가.

테론이 연기상을 휩쓴 이유가 망가졌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녀배우들에게 ‘망가짐’은 감수해야할 희생이나 위험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돋보이는 기회가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원했던 미녀배우들이 테론 말고도 많았다고 하니 미인들의 미워지고자 하는 의지가 평범한 민간인들이 성형외과를 들락거리며 예뻐지고자 하는 의지와 다를게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로맨틱 코미디의 화사한 공주와 섹시한 액션 스타로도 만족 못해 한 줌도 안되는 평범한 외모의 주인공까지 독식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질없는 주문이겠지만 공평한 일자리 분배차원에서라도 예쁜 언니들이 망가지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알려드리자면 못생긴 애가 예쁜 척하는 것도 가관이지만 예쁜 애가 못생긴 척하는 건 더 밥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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