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이 구해주기나 기다리고 있으니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나죠!” <배트맨2>에서 한 여성을 악당의 손에서 구출한 캣우먼(미셸 파이퍼)은 따끔하게 일갈한다. 피토프 감독이 연출하고 할리 베리가 주연하는 2004년판 <캣우먼>도, 캣우먼을 힘과 관능이 넘치는 독립적 여성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배트맨2>와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캣우먼>은 헤로인 할리 베리에게 1940년 <배트맨> 코믹스에서 탄생한 원조 캣우먼 셀리나 카일과는 다른 신상명세를 부여했다. 이는 물론 제작사 워너가 새로운 <배트맨> 프랜차이즈를 추진하고 있는 사정도 고려한 결정일 것이다.
할리 베리의 새로운 캣우먼은 배트맨의 속모를 여자친구도 아니고, 고담시 주민도 아니다. 화장품 재벌 아베나 뷰티의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내성적인 여성 페이션스 필립스(할리 베리)는 회장(랑베르 윌슨)과 그 부인(샤론 스톤)의 가공할 범죄를 목격하고 그 때문에 살해당한다. 그러나 변을 당하기 며칠 전 그녀가 목숨을 구해준 이집트 고양이의 초자연적 보은으로, 필립스는 고양잇과의 슈퍼히어로로 부활한다. 어쩔 수 없이 팬들의 설왕설래를 야기하고 있는 화젯거리는 예고편에 공개된 할리 베리의 의상과 액션. 보디라인에 얇게 밀착했던 미셸 파이퍼의 의상과 달리 옷의 여기저기를 ‘전략적으로’ 찢어 피부를 그대로 노출시킨 캣우먼 가죽 의상은 “둔탁하고 진부해 보인다”는 불평도 만만치 않지만, 고양이가 움직일 때 도드라지는 척추와 힘줄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디자인됐다고 한다. 물론 “할리는 적게 입을수록 멋지다”는 제작자 디노비의 의견도 이유였으리라. 또 다른 만화 원작 블록버스터 <엑스맨> 시리즈의 스톰 역으로 눈빛만으로 적들을 날려버렸던 할리 베리는 <캣우먼>에서 일일이 차고 할퀴고 채찍질하는 수고를 감당한다. 90년대 팜므파탈의 아이콘 샤론 스톤과의 일대일 대결도 예고된 가운데, 캣우먼의 무술로 선택된 것은 브라질의 무술 겸 댄스인 카포에이라. 원반처럼 몰아치는 카포에이라의 회전동작이 도심에 일으킬 회오리가 기대되는 볼거리다. 여러 인터뷰에서, “캣우먼 의상을 입고 있는 동안은 여성으로서 파워와 섹슈얼리티를 생생히 실감한다”고 말하고 있는 할리 베리. 고양이와 여성의 오랜 유비 관계를 얼마나 민첩하고 통쾌한 액션영화로 번안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