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셀프 컨설턴트의 다음 단계, <스파이더 맨2>의 토비 맥과이어
2004-07-08
글 : 김혜리

스파이더 맨은 뭐랄까, 생계형 슈퍼히어로다. 흥행 도달불능점으로 여겨졌던 개봉 주말수입 1억달러를 보란 듯이 돌파한 1편부터, 스파이더 맨은 그 모양이었다. 피터 파커가 초능력을 최초로 발휘하는 무대는 고작 돈내기 레슬링의 링. 거기서 피터는 상금으로 중고차를 사서 좋아하는 소녀를 태워주겠다는 일념으로 공중제비를 넘었다. 지금쯤이면 영웅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이 되지 않았을까 싶건만, 2편은 스파이더 맨의 생활고를 더욱 강조한다. 2년을 기다린 관객은 한손에 네댓판의 피자를 들고 마천루 사이를 날아다니며 배달에 여념이 없는 스파이더 맨과 재회한다. 틈틈이 시민을 구조하느라, 수업은 빼 먹고 아르바이트는 해고되고 사랑하는 여자의 공연에 지각하는 피터의 청춘은 눈물겹다. 그는 꽉 끼는 스판덱스 의상이 민망하다고 생각하는 슈퍼히어로다. 세탁기에서 다른 빨래를 물들이는 원색 거미옷처럼, 영웅의 사명은 그의 일상을 망쳐놓는다.

토비 맥과이어(29)는 뭐랄까, 아슬아슬한 스타다. 배우로서 맥과이어는 아슬아슬하지 않다. 그는 <아이스 스톰> <플레전트빌> <원더 보이즈> 같은 영화가 이력서에 박힌 중견이다. 다만, 할리우드 스타로서 토비 맥과이어는 초보다. 그는 <스파이더 맨>의 보수로 집을 사서 베벌리힐스 주민이 됐다. <스파이더 맨2> 제작 과정의 해프닝은 시사적이다. 만성 허리통증을 이유로 일정- 그리고 아마도 출연료- 조정을 요구한 맥과이어에게 소니는 “다른 배우랑 할 테니 몸조리 잘해라”는 투의 통보를 보냈다. 민망하게도 맥과이어는 여자친구 아버지인 유니버설 CEO 론 메이어의 강력한 권고와 지원 사격을 받고서야 가까스로 피터 파커 역을 되찾았다. 2편에서 초능력이 감퇴하는 바람에 자동차 위로 추락해 “아이고, 허리야” 신음하는 스파이더 맨의 모델은 맥과이어 자신인 셈이다. 소니는 8억달러가 넘는 돈을 번 힘이 토비 맥과이어라는 배우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는 한편, “너는 출연작 흥행과 무관하게 대스타인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래도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은 맥과이어에 동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아무리 <스파이더 맨>이라도 안 맞는 배우 다섯명 데리고 찍어봐라. 박스오피스고 영화고 물건너간 거다.”

그러나 어찌보면 배우 토비 맥과이어를 몰아세우는 고민은, 피터 파커 역에 완벽한 배우라는 바로 그 점인지도 모른다. <스파이더 맨>뿐 아니라 맥과이어는 재능과 미덕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심신이 굶주린 청년 역을 탁월하게 연기해 기반을 다졌다. 갓 10대를 넘어선 철부지 부모의 첫아이로 태어나 친척집을 전전하며 13살부터 “스스로를 양육한” 맥과이어는 고아의 얼굴을 갖고 있다. 좀처럼 깜박이지 않는 큰 눈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장한 좋은 배우들이 흔히 그렇듯 끈질긴 내성과 관찰을 드러낸다. 괄호로 묶인 모양의 얇은 입술에서 한 박자 늦게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고음은, 거절에 익숙한 것처럼 들려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한다. 하지만 맥과이어는 언제까지나 사춘기의 비범한 초상으로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집 저집 떠돌이로 유년을 보냈고 연예계 입성 뒤에도 한동안 변두리에 머물렀던 맥과이어는 경력 관리에 정원사 같은 정성과 집념을 기울이기로 유명하다. 커티스 핸슨 감독은 <원더 보이즈>를 찍던 2000년에 맥과이어가 이미 스파이더 맨 역을 어떻게 따낼지 궁리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피터 파커처럼 “영웅(스타)이 되어야만 하나?”를 놓고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토비 맥과이어는 자신을 세상 속에 못질해두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할리우드 스타덤이라는 미덥지 않은 거미줄이라 해도. “4편의 시나리오가 최고로 좋고 소니의 지분을 주겠다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죠. 큰 회사잖아요?” <스파이더 맨> 3편까지만 계약한 그의 최근 농담이다. <버라이어티>의 편집장은 공개서신으로 “브랜드는 스튜디오 재산이다. 당신 같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자율적이라고 믿겠지만 그건 위험한 습관”이라고 훈수를 뒀지만, 그것은 이미 제작사를 차려 스파이크 리의 〈25시>를 비롯한 여러 편의 ‘프로듀서’로 나선 토비 맥과이어에게는 불필요한 충고였다.

사진제공 콜럼비아트라이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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