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그의 육체에 슬픔이 있더라, <썸머타임> 배우 류수영
2001-06-13
글 : 심지현 (객원기자)
사진 : 정진환

남자 배우를 경탄하는 문구란 대체로 이렇다. 그들은 대개 ‘조각 같은 외모’를 가졌는데 그 내용을 살피자면, 끌로 깎은 듯한 턱에 섬세한 콧날을 얹고, 살짝 말려올라간 감각적인 입술엔 뮤즈가 선사한 듯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더라는 것들이다. 남자의 육체가 완전함을 의미하던 시절, 그 육체에 깃든 아름다움은 곧 ‘절대선(善)’으로 치환되었다. “아름답기에 선하다”는 고대 집행관의 판결은 왠지 현재에도 유효한 듯이 보였다. 칼에 맞아 죽은 운없는 건달도 그런 까닭에 더욱 애달팠으며, 아랫집 유부녀를 끌어안은 성마른 젊은이도 얼마간 용서가 되더라는 계산. 대중 앞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류수영(23)이 결국은 특례 판결의 수혜자일 뿐이란 결론은, 그러나 중간에 셈이 어긋난 답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99년도 여름, 호동이형(강호동)이 사회를 보는 <캠퍼스 영상가요>에 출연한 게 처음이었어요.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나가 차력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기가 막혔어요. 결국 1등 먹었죠. 동아리가 전통 무예하는 곳이었는데 실제 배우는 건 불뿜기 5단계, 역기돌리기, 공중부양 뭐 이런 거였어요. 모꼬지나 학교축제 땐 동아리에서 배운 차력솜씨로 용돈도 벌고, 한번 하면 200만원은 거뜬했으니까요. 얘기가 딴 데로 새버렸네. 그 무렵 SBS에서 <최고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5승 하면 외국여행도 보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친구들끼리 이러쿵저러쿵해서 나갔어요. 2승에 전자레인지랑 세탁기, 냉장고 탔고요. 그렇게 방송국 드나들다 보니 아는 사람도 생기고 그 소개로 MBC 주간연속극 <깁스가족>에 출연하게 된 거죠. 처음엔 ‘레지던트 2’인가 그랬어요. 방송 없는 날엔 FD형들 거들어 밥도 나르고 잔심부름도 하고 그러니까 작가 누나들이 예쁘게 봤는지 막판에 역이 커지더라고요. <깁스가족>이 이상한 모양새로 찌그러지고 나서, SBS 아침연속극 <사랑과 이별>이랑 <남과 여>에서 주연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매니저형도 생기고 연기지도도 받게 됐어요. 당시 매니저형이랑 <썸머타임>의 이정학 프로듀서랑 형, 아우 하던 사이였는데 남자 배우 캐스팅이 덜 됐다며 절 한번 보자고 하더래요. 그래서 찾아갔더니 보자마자 같이 일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시나리오 읽다가 ‘공포의 32신’에서 그만 멈췄어요.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노출신이었거든요. 그때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이거 그냥 벗는 영화 아니다, 사회에서 떠밀려나고 사랑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중적인 슬픔을 가진 남자의 영화다라고. 찍을 때도, 찍고 난 뒤에도 후회 같은 거 없었어요. 근데 얼마 전에 신문 가판대에 ‘새로운 섹스심벌 류수영’이라고 크게 써 있는 거 보고 조금 짜증났었어요. ‘너 진짜로 했지?’라고 묻는 선배형들 보면서 직접 영화에 출연해보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했죠.

90년대 말 학번인 제가 그나마 광주를 기억하는 건 운동하던 선배들 덕분이죠. 명지대가 또 운동으로 유명하거든요. 얼마 전엔 강경대 열사 추모식이 있었죠. 운동권 학생을 연기하면서 어렴풋하나 그런 마음을 놓지 않으려 애썼어요. 스크린엔 잘 안 나타나지만. 연애는 지금껏 두번 반 했어요. 왜 반이냐면 걔랑은 손도 못 잡았거든요. 정신적 사랑만 한 거죠. 목숨거는 사랑 해보고 싶어요. 나 자신을 위해, 연기를 위해. 내년 가을쯤에 한건 터뜨릴 거예요. 그땐 ‘페이스’ 코너가 아니라 ‘스타덤’에서 인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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