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는 7년을 사귄 남녀가 있다. 여자는 이 남자의 프로포즈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남자는 7주년 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에 약할 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허술하다. 게다가 7주년 기념일에 선물을 사러가서는 사올 것은 안 사오고 대신 다른 여자와의 로맨스를 들고 온다. 그것도 당대 최고 여배우와의 로맨스를. 그 로맨스, 내 남자의 로맨스를 어떻게 말려야 하는 걸까? 그뒤로 보통 여자 김현주(김정은), 그 여자의 남자 김소훈(김상경), 그 여자의 남자의 또 다른 여자 은다영(오승현)은 “자연의 섭리”의 마지막 선택에 도달하기까지 ‘사랑의 먹이사슬’ 안에서 울고 웃는다.
<단적비연수> <울랄라 씨스터즈>를 지나 세 번째 영화에 이르러 로맨틱코미디를 선택한 감독 박제현은 영화의 처음에서 그 끝을 예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상 그 모든 평범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을 위한 100여분간의 곡절을 재미있게 꾸리면 된다고 다짐한다. 어쩌다 7년쯤 길게 사랑하다가 갑자기 혼란스런 사건을 겪게 되어도, 결국 승패는 이미 결정난 것이고, 이것은 안전한 위험이니 걱정하지 말 것을 영화 내내 일러준다. 즐기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감정이입이 가능한 몇 가지의 환상 또는 희망사항이 교차한다. <내 남자의 로맨스>는 그것들의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남자가 기다리라고 하면 그 믿음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에 망부석이 되어 닭다리를 들고 기다리는 순정한 여자(김현주)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 반대편에는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어도 한 남자를 위해 한순간에 날개를 꺾을 줄 아는 결단력 있는 여자(은다영)에 대한 환상도 있다. 그 사이에는 갑자기 어딘가에서 스타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평범한 남자(김소훈)들의 환상도 오락가락한다. 그 주변에는 모든 일 제쳐두고 친구의 애인을 지켜주기 위해 나서는 착한 친구들에 대한 우정의 환상이 있다. 또, 7년을 연애한 남자가 눈을 돌려 잠시 흔들렸어도 다시 갈등의 시간없이 깨끗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서사의 환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열렬히 교감을 나눈 여자와 멋지게 헤어질 수 있다는 쿨한 관계의 환상이 있다. 그러고나면 아빠가 못다 지은 집을 지어줄 남편이 되어 결혼한 뒤에 오래오래 잘산다는 동화적 환상이 있다.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거대한 환상 안에 이 작은 환상들이 여기저기 있다.
결론적으로 <내 남자의 로맨스>는 <울랄라 씨스터즈>보다는 훨씬 나은 영화가 되었다. 적어도 웃음을 찾으러 오는 관객을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험하지 않은 “자연섭리”의 환상이 7년간의 연애를 한 관객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의 대사들은 재치있고, 날렵하고, 때로는 진실이다. 그것들이 지나친 에피소드로 단절되어 있어서 서사를 뒤따르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내 남자의 로맨스>는 안전하고 유쾌하지만, 그 나아간 환상의 선을 넘어 다시 되돌아올 용기를 갖고 있지는 않다.
:: 박제현 감독 인터뷰
“탄산음료와 과일주스 사이의 맛을 내려고 했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로맨틱코미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랄까? 그런 것이 꾸준히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면 어색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런 로맨틱코미디를 오히려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로맨틱코미디를 만들면서 어렵다고 느낀 점은 없었나.
개인적으로 워킹 타이틀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러브 액츄얼리>가 나왔을 때는 속이 상할 정도였다. 한국에는 코미디 아니면 멜로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쪽은 그 사이에 로맨틱이 있다. 비유하면 그쪽은 슬러시가 있는데 우리는 탄산음료 아니면 과일주스뿐인 거다. 그 적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관객이 이 영화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기를 바라나.
그냥 단순한 발상이다. 뺨맞을 말인지 모르지만 사랑은 ‘쿨’ 할 수 있다는 거다. 사랑이라는 게 유치한 거지만, 달리 생각하면 또 감동스러운 거다. 당신 옆에는 항상 그 쿨한 감동이 있다는 거다. 사랑하기도 바쁜데 그 사람과 농담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지금 시대는 아니다. 지금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그냥 얹혀간 것 같다. 눈높이에 맞춰가는 게 영화라고 생각한다.
김정은(김현주)을 전면에 세웠다. 대신 김상경(김소훈)은 다소 덜 입체적인 캐릭터가 된 것 같다.
김정은이 전면에 나서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이 영화는 전국에 계신 모든 현주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김정은과 김상경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전까지 김상경은 너무 무거운 이미지가 있었고, 김정은은 너무 오버 이미지가 있었다. 그 점이 상쇄됐으면 좋겠다는 게 취지였고, 김상경은 좀 라이트해졌고, 김정은은 덜 오버로 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사들이 재미있다.
대사를 문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맛, 언어다. 이 상황에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김선미 작가가 베이스를 잘 깔아줬고, 각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일상 대화를 위주로 바꾼 경우다.
반면, 너무 에피소드적이다.
그것은 전체적인 로맨틱코미디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많이 고민했다. 만약 멜로를 만들려고 작정했다면 일관된 드라마로 갔을 것이다. 드라마로만 가져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완전한 로맨틱코미디를 하기 위한 중간단계를 선택한 셈이다. 아는 길이 빠른 길이니까.
짧고 명쾌하게 이 영화를 설명해준다면.
이 영화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랑을 해야 할 모든 남녀가 봤으면 좋겠다. 각자 자신들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